판사들이 ‘재판거래’ 의혹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를 정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재판거래’ 의혹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 행정처가 정권에 유리한 판결들로 청와대와 거래를 시도하는 문건을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대법원은 지난달 25일 특별조사단을 운용하고 “문건이 실행되지 않아 형사처벌할 사안은 아니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김명수 대법원장이 “검찰 고발도 검토하겠다”는 의견을 내면서 의혹 처리 절차에 논란이 일고 있다.
전국법관대표회의 소속인 판사 115명은 11일 오전 10시 경기 고양 사법연수원에서 임시회를 열고 양승태 사법부 시절의 재판거래 의혹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정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본래 소속 판사는 119명이나 4명은 재판 일정 등을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
대표판사들은 논의를 거쳐 다수결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관한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선언’이라는 제목으로 입장을 채택해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법원 전체 구성원에게 공개할 방침이다. 판사들 내부에서는 의혹을 검찰이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축과 재판거래 의혹을 검찰에까지 넘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사법부 내에서 해결하자는 축으로 나뉘어진 상태다. 이번 회의는 대표판사들의 모임인 점을 감안해 어떤 입장에 힘이 실릴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재판거래’ 의혹 수사와 관련해서는 판사들뿐 아니라 법조계 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7일 전국 각급법원 법원장들은 긴급간담회를 열고 “사법부에서 고발, 수사의뢰 등 조처를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을 냈고, 지난 5일에는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63명 중 41명이 ‘재판거래’ 의혹을 검찰에 고발하지 않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냈다. 이들은 “대법원 조사단이 이 사안을 1년 3개월 동안 세차례 조사했는데 이 의견을 무시하고 수사와 고발을 의논하는 것은 법원 스스로 사법 신뢰성을 해치는 행위”라 고 주장했다. 대법원도 11일 ‘재판거래’ 의혹과 관련한 문건의 추가 공개는 없다고 못박은 상태다.
이에 반해 적극 수사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11일 전국지방변호사회는 “자의적 판단을 배제하고 사법행정권 남용과 관련한 미공개 문건을 전면 공개해야한다”며 “각 문건 작성자와 작성 경위, 문건 보고 절차 등을 성역없이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는 시국선언문을 냈다. 비교적 젊은 법조인들은 검찰 고발로 확대해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고, 중견·고위 법조인들은 사법부 자체적으로 해결해야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의결한 내용을 전달받은 후 최종결정을 위한 검토에 들어갈 예정이다. 그는 이날 오전 9시5분경 출근하면서 “전국법관대표회의 논의결과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여러 의견 중 하나로 참고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국정조사) 역시 여러 가지 의견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면서 가능성을 열어뒀다.
김종형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