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사람들이 놀라는 걸 좋아해”… 김정은·트럼프 ‘협상스타일’

입력 2018-06-11 10:24

미국 워싱턴DC의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 빅터 차는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놀랄 준비 하라. 두 지도자는 사람들이 놀라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몇 가지 ‘공통점’ 중 하나는 이것이다.

북미정상회담을 향해 달려온 과정에도 두 사람의 이런 공통점이 그대로 투영됐다. 전격적인 회담 성사부터 턱없이 짧았던 준비기간에 롤러코스터를 탄 듯 회담 취소와 복원을 거듭한 장면까지 지켜보는 이들은 매번 놀라야 했다.

이 때문에 ‘세기의 담판’을 자신 있게 예측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일치된 관측은 ‘예측불허’라는 한마디로 압축된다. 정상회담은 결코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지만, 이번 정상회담은 그 속설을 뒤집을 수도 있고, 또 모두가 어렵다고 말해온 비핵화 합의를 전격적으로 끌어낼 수도 있다.

싱가포르 더스트레이트타임스는 10일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모두 불같은 성격에 자기주장이 강하고 주목받기를 좋아하며 벼랑끝 전술을 구사한다는 점에서 협상 스타일이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업가로서 다앙한 협상 경험을 자랑하고 있다. 베스트셀러 ‘거래의 기술’을 펴낼 만큼 협상 전문가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평소 지인들에게 문을 닫아걸고 1대 1 대화를 하면 김 위원장을 설득시키고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나이는 어리지만 집권 7년차에 접어들 만큼 국정운영 경험이 많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의 집권 이후 미국과의 협상에서 북한이 별로 밀린 적이 없었다는 관찰도 이런 전망에 한몫 하고 있다. 두 사람은 ‘말(言)의 전쟁’에서도 위험수위를 넘나들 만큼 난타전을 주고받았지만 어느 한 쪽이 물러서지 않았다.

반면 둘의 차이도 뚜렷하다. 싱가포르국제문제연구소 니콜라스 팡 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변덕스런 리더십을 구사하고 직감을 중시하는 스타일인 반면 김 위원장은 냉정한 실용주의자이며 교활한 협상가”라고 비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의 측근들도 속내를 짐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북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최선희 외무성 부상 등의 비난성명이 잇따르자, 정상회담을 취소한다고 발표한 게 대표적이다. 예상을 뒤엎는 카드로 판을 깨겠다고 나서자 김 위원장은 매우 당황했다. 부랴부랴 문재인 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김 제1부상에게 유감을 표시하는 성명을 내도록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회담 복원을 선언하면서 완전히 주도권을 되찾았다.

김 위원장은 협상 상대에 따라 여러 가지 면모를 드러낸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는 시 주석의 말을 받아 적는 공손한 태도를 보였고, 문 대통령과의 만남에서는 친척 아저씨나 형을 만난 것 같은 친밀감을 표시했다. 시 주석이 북한의 혈맹인 중국의 지도자이고, 문 대통령은 북한에 고향을 두고 있는 한국의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김 위원장이 더욱 가까운 사이라고 여겼겠지만 손윗사람에게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동양 문화의식이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싱가포르 라자라트남 국제연구소의 그레이엄 옹웹 박사는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다른 협상 태도를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옹웹 박사는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대등한 관계라는 걸 과시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당당하게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