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 당일인 12일 오후 2시(현지시간·한국시간 오후 3시) 싱가포르를 떠날 예정이라고 로이터 통신이 회담 상황에 밝은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잠정 계획’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이 계획이 현실화된다면 김 위원장은 오전 회담과 오찬을 마치고 곧장 북한으로 돌아간다는 얘기가 된다.
로이터 통신은 10일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김 위원장의 화요일 출국 일정을 전했다. 소식통은 사안의 민감성을 고려해 익명을 요구했으며, 김 위원장의 오후 2시 출국 계획이 “잠정적”이라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첫 정상회담을 하고 13일쯤 귀국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첫 회담은 싱가포르 시간으로 12일 오전 9시(한국시간 오전 10시)에 시작되며, 미국 당국자들과 언론은 회담이 13일까지 연장될 가능성을 언급해 왔다.
김 위원장이 12일 오후 2시 출국할 경우 북·미 정상회담 일정은 오전 회담과 오찬으로 마무리 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사전 예측을 완전히 뒤집는 일정이다.
CNN은 지난 6일 북·미 정상회담이 하루 더 연장될 가능성을 대비해 싱가포르에 있는 미 관리들이 비상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달 25일 트위터를 통해 “필요하다면 그날(6월 12일)을 넘겨 연장될 것”이라고 밝혔다.
눈에 띄게 단축된 일정은 두 가지 추론을 가능케 한다. 첫째는 두 정상이 이미 오전 회담만으로 ‘비핵화 협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상황까지 도달해 있다는 가정이다.
북한과 미국은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판문점 통일각에서 총 여섯 차례 실무 협상을 진행했다. 지난달 27일부터 지난 6일까지 비핵화 로드맵 등 정상회담 의제를 놓고 치열한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북·미가 실무협상에서 포괄적 의제는 물론 합의문의 구체적 문구까지 조정했을 거라고 내다봤다. 실제 북·미 정상회담에선 두 정상이 결단을 내릴 ‘빅딜’만 남겨놨을 거라는 추측이다.
두 번째는 북·미가 싱가포르에서 막판 비공개 접촉으로 미리 중요 의제를 타결할 가능성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회담을 이틀 앞둔 10일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이는 정상회담 직전까지 거듭될 사전 협상을 직접 지휘하겠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 판문점에서 북·미 정상회담 실무협상을 맡았던 성 김 주필리핀 미국대사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이날도 싱가포르에서 접촉해 의제조율 협상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막바지 물밑 접촉이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북·미 정상회담의 일정이 단축되는 상황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
이번 북·미 정상회담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회담 전망은 그야말로 ‘예측불허’다. 전격적인 회담 성사, 턱없이 짧았던 준비기간, 비핵화를 둘러싼 여전한 의견차 등을 감안해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두 사람의 성격과 협상 스타일이 회담 전망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싱가포르의 유력지 더스트레이트타임스는 10일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모두 불같은 성격에 자기주장이 강하고 주목받기를 좋아하며 벼랑끝 전술을 구사한다는 점에서 협상 스타일이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업가로서 다앙한 협상 경험을 자랑하고 있다. 베스트셀러 ‘거래의 기술’을 펴낼 만큼 협상 전문가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평소 지인들에게 문을 닫아 걸고 1대 1 대화를 하면 김 위원장을 설득시키고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나이는 어리지만 집권 7년차에 접어들 만큼 국정운영 경험이 많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의 집권 이후 미국과의 협상에서 북한이 별로 밀린 적이 없었다는 관찰도 이런 전망에 한몫 하고 있다. 두 사람은 ‘말(言)의 전쟁’에서도 위험수위를 넘나들 만큼 난타전을 주고받았지만 어느 한 쪽이 물러서지 않았다.
반면 둘의 차이도 뚜렷하다. 싱가포르국제문제연구소 니콜라스 팡 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변덕스런 리더십을 구사하고 직감을 중시하는 스타일인 반면 김 위원장은 냉정한 실용주의자이며 교활한 협상가”라고 비교했다.
그런 점에서 싱가포르 라자라트남 국제연구소의 그레이엄 옹웹 박사는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다른 협상 태도를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옹웹 박사는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대등한 관계라는 걸 과시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당당하게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