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투표하고 싶다” 발달장애인·청소년 ‘평등한’ 참정권 촉구

입력 2018-06-08 16:16

6·13 지방선거 사전투표장 앞에 교복과 휠체어가 등장했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평등한 투표권’을 외쳤다.

현재 청소년들은 투표권이 없다. 발달장애인들은 투표권이 ‘있기는’ 하다. 사전투표 첫날인 8일, 이들의 참정권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잇따라 열렸다.

◇ “우리는 유령이 아닙니다”…발달장애인, 평등한 투표권 요구

“21대 총선에서는 발달장애인도 이해할 수 있는 그림투표용지를 만들어주세요.”

발달장애인 자기권리옹호단체 ‘한국피플퍼스트’는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사전투표소인 종로장애인복지관 앞에 나란히 섰다. 유령 캐릭터인 ‘가오나시’ 복장을 한 참가자도 곳곳에 보였다. 이들은 “발달장애인은 선거철마다 유령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다”고 꼬집으면서 공직선거법 개정을 촉구했다.


문윤경 한국피플퍼스트 집행위원은 “발달장애인은 선거 날이 가장 싫다. 집으로 배달되는 공보물은 너무 어렵고, 그걸 보고 누굴 찍어야 할지 몰라 무작정 아무데나 찍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더 화가 나는 것은 발달장애인이 직접 투표하지 못하고 부모님이나 시설 교사들이 시키는대로 투표하는 것이다. 우리는 간섭받지 않고 투표하고 싶다”고 소리 높여 외쳤다.

이들은 먼저 발달장애인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선거 공보물과 투표용지를 제공해달라고 촉구했다. 투표용지에 정당로고, 후보자 사진 등을 넣어 달라는 것이다. 각 지역마다 설명회를 개최해 이들의 권리를 존중해달라고도 했다.

이어 발달장애인 비밀투표 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사적인 관계에 있는 부모·사회복지사 등이 아니라 공적 조력인을 투표소마다 배치해 줄 것을 요구했다.

김정훈 한국피플퍼스트 전국위원장은 “공직선거법에는 발달장애인 선거 접근권을 위한 어떠한 편의제공도 명시되어 있지 않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우리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고 한다”며 “발달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위해 선거법을 조속히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교복입고 투표한 시민들, “청소년이 유권자였다면 상황 달랐을 것”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는 이날 같은 장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모든 청소년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청소년의 존재와 목소리는 선거와 정치의 모든 과정에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면서 선거연령 하향을 강력 주장했다.

기자회견에 앞서 모두 교복으로 갈아 입은 이들은 전체 인구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청소년을 몽땅 배제한 채 치러지는 선거를 그 자체로 ‘부(不)정의’로 봤다. 대의제 민주주의 사회에서 한 집단의 선거권을 통째로 부정하는 행위라고 했다.

하승수 정치개혁공동행동 대표는 “세계적으로도 선거연령이 만 19세는 거의 없다”면서 “일본도 선거연령이 만 18세로, 선거 홍보 포스터가 아예 교복을 입고 투표할 수 있다는 내용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다음 선거는 꼭 청소년과 함께 투표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참정권 요구는 절박하고 간절해”

지난 3월 22일 청소년들은 ‘선거권은 인권이다’라고 쓰인 천을 몸에 두르고 삭발식을 하기도 했다. 6·13 지방선거에서 만 18세 청소년들이 첫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늦어도 4월까지는 선거법 개정을 완료해달라는 울분이자 호소였다.


청소년들이 ‘강성노조’의 전형적 투쟁 방법으로 여겨지던 삭발식과 천막농성을 선택했다는 것은 그만큼 결의를 보이기 위한 행동이다. 이날 삭발을 한 김윤송(16) 농성단장은 “우리가 정말 진지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성인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꿈나무다운 밝고 발랄한 투쟁을 하기에 청소년 참정권 요구는 정말로 절박하고 간절하다”며 “청소년들은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에 쉽게 폭력과 부당한 대우에 노출된다”고 말했다.


함께 삭발을 한 김정민(17) 양은 “청소년 참정권 보장은 ‘무시해도 되는 것’으로 여겨져온 청소년들의 외침이 더 이상 무시당하지 않게 하는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