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분만 건수가 가장 많은 산부인과 전문 제일병원이 전면 파업에 들어가면서 임신부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제일병원지부는 4일 “지난달 직원들의 임금 15~50%를 일방적으로 삭감한 경영진 전원의 사퇴를 요구한다”며 조합원 500여 명 중 필수 근무인력을 제외한 250명이 무기한 파업을 선언했다.
하루에 15명에서 20명이 분만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여성병원이 파업하자 분만 예정이었던 임신부들이 큰 불편과 불안을 겪고 있다. 특히 제일병원을 찾는 임신부들은 대부분이 35세 이상의 고령임신이거나 이른둥이 등과 같은 고위험군이라는 점에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병원 측은 파업 당일 진료를 앞둔 임신부들에게 “피치 못할 응급수술이 아니면 분만이 어려울 수 있다. 6월18일 이후 정상진료가 가능해지면 다시 연락드리겠다”는 내용의 안내와 함께 다른 병원으로 옮길 것을 권고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임신부와 가족들은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출산이 코앞일 때 병원을 옮겨 의료진이 바뀌면 분만사고 등 돌발 상황이 발생할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이른둥이처럼 치료가 필요한 신생아의 경우에도 주치의를 바꾸거나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는 점에서 환자 가족들의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
노사는 수차례 교섭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제일병원지부에 따르면 병원 경영진은 월급 전날인 지난달 24일 갑자기 직원들의 연봉을 15~50% 삭감한다고 통보했다. 파업에 나선 병원 직원들은 “지난해 6월부터 병원의 재정상황이 나아지면 돌려 받는 조건으로 상여금까지 반납했는데 되레 임금삭감으로 뒤통수를 맞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반면 제일병원 측은 저출산 문제로 병원 재정이 악화돼 직원들의 월급을 “안 주는 게 아니라 못주고 있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분만환자 수가 2012년 6808명에서 지난해 4202명으로 38% 감소했다. 제일병원은 산부인과가 외래‧입원의료 수익의 62%를 차지하고 있다.
노조는 임금 삭감 철회와 함께 건물 증축으로 인한 무리한 차입 경영이 재정난을 악화시켰다며 이사장 퇴진을 요구했다. 병원 측은 이사장 퇴진에 대해서는 수용하겠다면서 임금 삭감은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병원이 정상화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