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에서 중년 남성으로부터 음란한 말을 들었다고 토로한 한 여대생의 글이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여대생은 남성의 발언을 녹음해 경찰에 제출했지만 직접적인 접촉이 없었다는 이유로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다며 분노했다.
여대생 A씨는 5일 “어젯밤 지하철역에 앉아 있는데 40대가량의 남성이 많은 자리 놔두고 굳이 옆에 앉더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남성은 A씨에게만 들리는 크기의 목소리로 “자위하고 싶다” “XXXX고 싶다” “만지고 싶다” “어차피 너도 하잖아” “똑같은 거야 같이 하자”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A씨가 반응하지 않자 이 남성은 “외롭다”면서 “같이 술 마시러 가자”고 말을 걸었다.
A씨는 평소 휴대폰 음성메모를 켜두고 다니는 습관이 있었다. 이날도 남성의 음성이 A씨 휴대전화에 모두 녹음됐다. A씨는 경찰에 신고한 뒤 이 파일을 제출했다. 하지만 녹음파일도 소용이 없었다. A씨는 “(경찰이) 직접적인 접촉이 없어서 처벌규정이 없으며 굳이 한다면 ‘불안감 조성’으로 경범죄 처벌, 1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 것이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조사 과정에서 남성의 무임승차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A씨에 따르면 경찰은 성희롱이나 성추행으로 처벌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뜻을 전하면서 무임승차에 초점을 맞추고 수사를 진행했다. 경찰은 성희롱으로 처벌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특정성 성립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남성이 A씨를 직접 거론하며 발언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성희롱으로 볼 수 없다는 뜻이다.
A씨는 “나와 남성은 단둘이 있었고 가해자는 ‘너’라는 단어까지 쓰며 음담패설을 했지만 둘이 있었기 때문에 공연성이 없어 명예훼손이나 모욕이 될 수 없고 ‘너’라는 지칭은 나를 말한다는 확증이 없어 특정성 성립이 안 돼 성희롱이 아니라고 하더라”고 했다. 이어 “이제 그 남성은 여성에게 음담패설을 해도 처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을 것”이라며 “음성메모를 켜지 않고 다니는 여성의 경우 허위신고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것을 그 남성이 깨닫게 될 거라는 게 소름 끼친다”고 토로했다.
또 “남성을 쫓아 여러 역을 이동한 뒤에야 경찰이 도착해 잡았다. 남성이 눈치챌까 불안해하며 경찰에 10통이 넘는 전화를 해야 했다”면서 “피해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가해자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몰래 경찰에 연락한 후 가해자가 눈치채고 도망가거나, 날 기억하거나, 폭행할까봐 불안해하면서 기다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등굣길이 무섭다. 혹시 보복범죄가 있을까봐 불안해하며 두리번거리게 되는 것은 왜 오로지 내 몫인가”라고 호소했다.
이 글은 6일 오전 7시 기준 6만회가 넘는 ‘좋아요’를 받았다. 1700회 이상 공유되기도 했다. 네티즌은 “이래도 처벌이 안 되면 어떡하나” “정말 무섭다” 등의 댓글을 남기고 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