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봉투에 이름’ 日 지자체들… “분리수거 책임” vs “사생활 침해”

입력 2018-06-06 13:00
일본 후쿠오카현 우키하시의 가연성 물질 쓰레기 봉투의 중앙(빨간색 표시)에는 주민의 이름을 적는 곳이 있다. 사진=서일본신문 웹사이트 캡처

“제가 사는 지역에는 쓰레기봉투에 이름을 적는 란이 있습니다.” 일본 후쿠오카현 우키하시에 사는 한 61세 여성은 황당한 듯 말했다. 분리수거를 제대로 안 해 발생하는 문제가 잦아지자 지자체가 이 같은 조치를 취한 것이다. 분리수거가 안 된 쓰레기봉투는 청소부가 직접 열어본 뒤 주인을 특정해 주의를 주는 지역도 있다.

하지만 쓰레기에는 사람의 흔적이 남아있다. 당연히 그를 둘러싼 여러 정보도 있다. 집주인이 어떤 맥주를 즐겨 마시는지, 어떤 옷을 입었는지 알 수 있으며, 쓰다 버린 메모지에는 친구와의 약속 시간과 장소가 적혀 있을 수 있다. 버린 옷으로 아이가 몇 살 정도 됐을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유추해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쓰레기봉투에 이름을 쓰거나, 봉투를 개봉하는 데 거부감을 갖는 이들이 많다. 스토커가 쓰레기를 가져가는 사례도 종종 발생한다. 일본 서일본신문은 5일 쓰레기봉투와 분리수거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보도했다.

◇“이름을 반드시 기입하세요”

우키하시의 가정용 쓰레기봉투는 반투명한 파란색이다. 그 중앙에는 커다랗게 이름을 쓰는 곳이 있고, “이름을 반드시 기입하세요”라는 문구가 딸려 있다. 시청 시민생활과의 테라시마 카츠시 계장은 “기명은 강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부탁”이라고 설명했다.

청소부는 육안으로 혹은 직접 쓰레기봉투를 들어보면서 판별을 한다. 시 관계자는 “쓰레기 수거를 할 때 무기명 쓰레기봉투가 있어도 제대로 분리수거가 됐다면 회수해간다”고 말했다.

반면 분리수거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 X 표시가 적힌 스티커를 붙인 뒤 주의를 준다. 예컨대 가연성 쓰레기봉투에 타지 않고 무거운 금속제품이 있을 경우, 스티커를 붙인 뒤 수거해가지 않는다.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을 경우 청소부는 쓰레기봉투를 개봉해서 우편물 등을 통해 주인을 특정한 뒤 분리수거를 철저히 하라는 주의를 준다.

기명란을 쓰기 시작한 때가 언제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우키하시는 2005년 3월 옛 요시이정과 우키하정이 통합된 지역인데 우키하정은 통합 전부터 기명식 봉투를 쓴 것으로 전해졌다. 요시이정에선 2004년 9월 일반쓰레기를 고형연료재(RDF)로 바꾸는 시설 ‘클린 스테이션’이 가동됐는데, 이를 계기로 요시이정을 포함한 새 도시 전역에서 기명식 봉투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분리수거 책임감을 높이기 위해”

이 같은 조치는 주민들의 분리수거 위반으로 인한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도입됐다. 클린 스테이션의 경우 쓰레기를 RDF로 전환시키는 과정에서 가연성 쓰레기를 파쇄한다. 이 과정에서 파쇄기에 불연성 물질인 금속덩어리가 들어가 칼날이 파손되는 사고가 수차례 발생했다. 칼날 교체에만 매번 약 50만엔(약 500만원)의 비용이 들어가고 그때마다 시설 가동이 중단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지자체들은 기명식 봉투와 개봉조사의 효과가 있다는 입장이다. 테라시마 계장은 “이름을 쓰게 하는 것은 분리수거에 책임감을 갖게 해 위반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교토시는 기명식 봉투를 도입하진 않았지만 분리수거 위반 대책을 위해 개봉조사를 도입했다. 시에 따르면 플라스틱 쓰레기 분리비율은 2014년 37%에서 2016년 42%로 증가했다. 시 관계자는 “아직 충분한 수치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의식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기명식 봉투와 개봉조사를 실시하는 지자체는 전국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기명식 봉투는 사가현의 다케오시, 쿠마모토현 나가스정, 후쿠오카현 오노조시의 일부 지역 등에서, 개봉 조사는 구마모토시와 기타큐슈시가 도입 중이다.

◇“사생활 침해”… 스토킹 우려도

하지만 불만과 불안도 만만찮다. 개인정보보호에 정통한 이타쿠라 요이치로 변호사는 “상당한 이유가 없다면 봉투개봉은 프라이버시 침해가 될 수 있다”며 “스토킹을 유발할 위험도 있다”고 경고했다.

노나미 히로시 간세이가쿠인대학 환경사회심리학 교수는 “개봉조사를 하는 직원이 타인의 사생활을 악용할 경우 처벌하는 규정을 만들거나 스토킹 피해를 막기 위해 경찰과 제휴하는 등 주민의 불안을 덜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