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사법부, 난데없이 ‘창조경제 위한 사법한류’ 추진… 공개된 문건 살펴보니

입력 2018-06-05 16:05

‘창조경제 구현을 위한 사법한류 추진.’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는 “(대통령) 임기 내에 가시적 성과물을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을 개발해 제공한다”며 이런 보고서를 만들었다. 창조경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표적 경제 정책이었다. 당시 행정처는 “사법한류 추진은 (박근혜정부) 경제 혁신 3개년 계획의 강력한 동력이 될 것”이라고 적었다.

사법부가 난데없이 창조경제 정책을 고심한 이유는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서였다. 법원행정처가 5일 전문을 공개한 옛 행정처 문건 98건에는 ‘양승태 대법원’이 상고법원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청와대 협조를 얻어내려 한 정황이 곳곳에 담겼다.

행정처는 2015년 3월 “상고법원 실패는 (양승태) 대법원장 리더십 상실이라는 최악의 위기 상황을 초래한다”며 “새로운 BH(청와대) 설득 모멘텀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사법부와 청와대 간 유착 관계의 시작이었다.

문건에 따르면 행정처는 상고법원 도입을 ‘사법부의 가장 중차대한 과제’로 인식하고 모든 역량을 여기에 집중한다.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통령의 면담을 3일 앞둔 2015년 8월 3일 행정처는 ‘노동 개혁을 위한 노동분쟁해결 프로세스 혁신’ 보고서를 만들었다. 노동 시장 모순으로 노사 갈등의 폐해가 심각하다며 ‘노동심판위원회’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았다. 박 전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던 노동개혁 방안을 사법부가 연구한 것이다.

진보 성향 대법관을 막기 위해 상고법원이 필요하다는 논리도 내세웠다. 행정처는 “민변 등 진보 세력 배후에서 대법관 증원론을 강력 지지한다”며 “상고법원 도입이 좌절되면 진보 인사들이 최고법원 입성을 시도할 것”이라고 했다.

박 전 대통령과의 면담 이후 행정처는 “CJ(대법원장·Chief Justice)와 VIP(박 전 대통령) 면담으로 상고법원 입법추진 환경에 의미 있는 전환점이 도래했다”고 자평했다. “박 전 대통령이 상고제도 개선에 대해 공감을 표명했다”며 “이를 근거로 법무부 등을 압박해야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의 반대가 이어지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그해 11월 ‘BH와의 효과적인 협상 추진 전략’이란 문건을 직접 작성한다. “상고법원이 BH 비협조로 좌절될 경우 사법부도 더 이상 유대 관계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확히 고지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사법부가 삼권분립 원칙을 깨고 청와대에 우호적 자세를 취했다는 걸 스스로 방증하는 대목이었다.

행정처는 하급심 재판의 진행과 개별 판사를 자신들이 관리·감독할 수 있다고 봤다. 대법원에 올라온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처분 집행정지 사건에 대해서도 “결국 야당 의원들은 대법원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정치적 분석도 했다.


행정처가 이날 원문을 공개한 문건 98건에는 언론 등이 공개를 촉구했던 문건 8건과 파일이 손상돼 내용을 알 수 없는 문건 2건이 포함됐다.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해당 문서에 제기되고 있는 의혹을 해소하고 특별조사단 조사의 신뢰성을 담보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410개 파일 중 유력 일간지와 변호사 단체에 대한 첩보·전략 문건 등 일부 문건에 대해선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는 거리가 있다”며 공개하지 않았다.

이날도 서울남부지법 단독·배석판사 등 전국 법원에선 “사법행정권 남용 관련자들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입장 표명이 이어졌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 비공개 간담회에 참석해 이번 사태에 대한 입장을 들었다.

양민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