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서있는 이승우, 그의 월드컵 활약이 절실한 이유

입력 2018-06-05 12:43
사진 = 2017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에서 10번을 달고 뛰던 이승우. 뉴시스

◆최종 엔트리 발탁에 이어 ‘에이스의 상징’ 10번 부여…

러시아 월드컵에 출정하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축구 등번호가 발표됐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역시 10번을 받은 이승우였다. 그의 A매치 발탁도 놀라운 가운데 10번을 달고 월드컵 무대를 누빈다고 예상한 이는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손흥민과 김신욱, 황희찬이 자신의 고유번호가 뚜렷한 가운데 공격자원에서 10번을 받을만한 선수가 없었기에 이승우로 돌아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10번은 전통적으로 ‘에이스’를 상징하는 번호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독일의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와 브라질의 네이마르, 독일의 메수트 외질, 프랑스의 킬리앙 음바페 등 각 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선수로 꼽히는 선수들이 10번을 부여받았다.

한국에서도 1986년 멕시코월드컵 아르헨티나전에서 한국의 월드컵 본선 첫 골을 터뜨린 박창선,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때 이상윤, 1994년 미국월드컵 고정운, 1998년 프랑스월드컵 최용수가 모두 10번을 달고 뛰었다. 이후 새롭게 축구스타로 떠올랐던 박주영(FC서울)이 2006년 독일월드컵과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3회 연속 유니폼에 10번을 새겼다.


◆이승우의 ‘현재’ 월드컵이 끝나면 이탈리아 2부리그 ‘벤치’로

이승우는 2011년 초등학교를 졸업한 13살의 어린 나이에 바르셀로나 유스팀 ‘라 마시아’에 입단했다. 백승호에 이어 한국인으론 두 번째였다. 국내 각종 초등부 대회를 휩쓸며 대형 유망주로 꼽혔던 이승우에게 국제적 관심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승우는 바르셀로나 후베닐A와 B팀 등 유소년 팀만 전전하다 결국 자리를 잡는 데 실패했다. 2017년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반전의 기회를 잡고 출전 시간을 부여받기 위해 세리에A에 새롭게 승격한 헬라스 베로나로 이적했다. 하지만 그곳에도 이승우의 자리는 없었다.

시즌 전반기 출전 기회를 거의 보장받지 못하며 시련의 기간을 보낸 이승우는 팀 동료 다니엘 베사가 제노아로 이적하고 지암파올로 파치니가 스페인 레반테로 임대돼 경쟁자가 준 후반기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17세의 어린 선수 모이스 킨에게도 밀리는 처지로 전락했다.

그렇기에 이번 이승우의 월드컵 최종 엔트리 발탁은 더욱 논란이 됐다. 신태용 대표팀 감독은 이승우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과 시즌 마지막에 페이스를 끌어올렸던 부분을 높게 평가했다. 그리고 이승우는 지난 28일, 온두라스와의 평가전에서 4-4-2 대형의 왼쪽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하여 신태용 감독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헬라스 베로나 때처럼 왼쪽 날개와 처진 공격수 포지션을 수행하며 공격 과정의 유연제 역할을 했다. 그동안 한국 대표팀엔 없었던 새로운 젊은 ‘활력소’가 됐다.

이승우는 피지컬적인 부분이 커다란 약점으로 꼽힌다. 바르셀로나 대선배인 리오넬 메시는 단신임에도 무게중심이 낮아 완벽한 밸런스를 바탕으로 짧은 시간에 수십 차례 공을 터치하며 상대 수비수들을 혼란케 한다. 하지만 근육구조가 갖춰지지 않았던 이승우는 장신의 수비수들이 많은 이탈리아 특유의 거친 수비를 이겨내지 못했다.

이승우와 함께 소속팀 헬라스 베로나 역시 시즌 내내 부진한 흐름을 이어갔다. 결국 7승4무27패라는 최악의 성적과 함께 19위로 2부리그 강등을 확정했다.

월드컵은 유럽 클럽의 스카우터들이 가장 눈 여겨 보는 무대다. 숨어있는 각 대륙의 선수들의 기량을 한번에 확인해 볼 수 있는 기회기 때문이다. 박지성도 2002년 한일 월드컵이 끝난 이후 네덜란드의 PSV아인트호벤으로 이적해 유럽무대에 첫 발을 디뎠다. 많은 월드컵 스타들로 인해 월드컵 직후 이적시장은 가장 ‘뜨거운’ 이적시장으로 꼽힌다. 천억원 이상의 초대형 계약들도 많이 발생한다.

만일 이번 월드컵에서 ‘조커’로서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한다면 이탈리아 2부리그로 돌아가 다시금 힘겨운 주전경쟁을 펼쳐야 하는 이승우다. 이젠 돌아갈 곳이 없다.


◆출정을 앞둔 이승우의 다짐 “죽기 살기로 할 것”

이승우는 4일 오스트리아에서 진행중인 월드컵 사전 전지훈련에서 “평소처럼 열심히 하는 모습을 경기장 안에서 보이겠다. 대표팀에서 중요한 10번을 받게 돼 자신감을 느끼게 된 건 사실이다. 자신감 있게 형들과 경기장에서 좋은 모습 보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어 “죽기 살기로 하는 것은 대표팀에 속한 선수라면 당연하다. 죽기 살기는 물론 잘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등번호 10번에 대한 가치를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다.

자신감을 가지고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한 플레이를 해야 한다. 한국 축구가 롱볼로만 전개 되는 축구가 아니라는 것을 전 세계에 증명해야한다.

월드컵 본선 진출국의 10번과 이탈리아 2부리그(세리에B)의 벤치, 모두 이승우가 현재 위치하고 있는 자리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