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변홍례>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
극단 하땅세의 39회 서울연극제 공식 참가작 <그때, 변홍례>(작 어단비·연출 윤시중)는 일제강점기 시대(1931) 일본인에 의해 교살(絞殺)로 죽은 조선인 처녀 마리아(본명 변홍례)의 실제 살인사건 이야기다. 한 세기 종착점에서 죽음을 둘러싼 진실과 인간의 욕망과 탐욕을 투영한다. 하녀 변홍례는 타살흔적이 선명한 데도 살인자는 무죄 판결로 실종된 채 죽음의 진실도 멈춰섰다.
이 한 여인의 죽음을 신예작가 어단비가 희곡으로 그려냈고, 지난해 <위대한 놀이>로 대한민국 연극대상을 상을 수상한 윤시중 연출이 죽음에 가려진 진실을 들고 <아트원소극장3관·5.18~27일까지>에서 <그때, 변홍례>로 공연됐다. 작가의 원제는 <천하의 나쁜 년, 변홍례>로 극단 하당세의 배우들이 원작텍스트를 공연으로 구현해 내면서 공연대본은 <그때, 변홍례>로 담겨졌다.
희곡을 무대로 옮겨야 하는 연극특성상 배우와 연출은 1931년도 <그때, 변용례>의 죽음과 사건, 인물, 시대배경의 특징을 무대로 구현(俱現)해 내는 방식을 연극적 놀이방식을 취하고 있다. 암울한 1930년대의 모순과 권력, 변하지 않는 시대의 그림자들을 놀이로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고 극을 재현해 내면서 표현과 형식, 무대구현 방식이 돋보였고 배우들은 시대의 간극을 좁혀냈다.
살인자를 추격하는 평의한 극으로 달렸다면 조선인 여인의 죽음과 희생 속에 은폐된 시대의 추악한 민낯들이 퇴색 되었을 텐데 극단 하땅세 배우와 연출은 놀이정신으로 무장하고, 장면으로 구현되는 행동들이 흑백 영화의 한 장면으로 교차시키며, 놀이극 형식으로 표현시켰다. 죽음의 진실을 둘러싼 모순과 권력, 추악한 인간의 욕망과 탐욕, 법과 정의의 부재 등 시대 속에 은폐된 추악함은 한국사회 수중 속에 침몰되어 있는 진실의 실종과 정의의 부재를 들어낸다. 한 세기가 다 되어 가는 종착점에서 바라보는 그 시대와 현재 시간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인간의 욕망과 탐욕은 더 비해해 졌고, 묻지마 살인사건은 거리를 활보하고, 권력은 송곳이 되고 있다. 또한 법과 정의는 여전히 한국사회에 침몰되어 잠든 채 한 세기를 형성하고 있다.
조선인 처녀 마리아의 죽음
1931년 8월 부산 초량정 철도국(대교) 관사 다카하시(大橋) 관사에서 조선인 하녀 마리아( 본명 변흥례)가 침실에서 교살(絞殺)로 죽은 채 발견된다. 나이 20세다. 본명보다도 예명 마리아로 불려졌다. 고아로 자란 마리아는 여인으로 인간의 삶을 숭고하게 살고 싶었고, 신분 상승의 욕망은 강렬했을 것이다. 일본인 남녀의 추악한 불륜과 치정관계에서 스며든 마리아의 욕망은 일본인에 의한 처참한 비극으로 침몰됐다.
당시 언론은 이 사건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부산 마리아 참살’ 사건으로 다루며 조선사회를 뒤흔든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랐다. 음부에서 발견된 잔인한 외상, 사인(死因)의 흔적은 질식사로 가슴과 입술에 물린 자국, 복부 외상이 발견됐다. 다카하시 부인과 불륜관계 였던 이노우에(장상), 그리고 마리아와 부적절한 관계였던 남편을 살인 용의자로 좁혀졌다. 범행을 자백하는 ‘투서’로 혼선을 빚었고 경찰은 일본인 유부남·유부녀가 욕정의 탐욕으로 마리아를 살해한 주범으로 부인을 지목했다. 1934년까지 3년에 걸친 재판과 판결에서 용의자 주범(부인)과 공범(이노우에)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법원은 풀어줬다. 변태적으로 신체를 강타한 흔적과 살해 교살된 조선인 처녀 마리아 죽음은 그렇게 시대에 묻혔다.
마리아와 인물의 관계도
마리아의 죽음과 사건의 개연성, 용의자들의 관계를 놓고 보면 ‘치정살인사건’이다. 철도회사를 운영하는 일본인 기업가 대교사장(김동우 분) 의 부인(권제인 분)은 철도회사 직원 장상 (유독현 분)과 내연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마리아가 알게 된다. 마리아는 조선인 남자 친구 구일(신민규 분) 과 사랑하는 관계였다. 조선인 하녀 변홍례(이수현 분)은 사장과 불륜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내연관계를 알고 있고 남편과 불륜 관계를 눈치 챈 부인은 마리아를 죽이기로 결심 한다.(극에서는 마리아를 죽인 살인범을 특정하지 않고 대교사장, 부인, 내연 남 정상, 세 사람을 향한다) 극에서는 장상의 내연관계 비밀을 알고 있고, 남편과 추악한 관계를 맺은 마리아의 죽음은 누군가에 의해 우연히 목격하게 된다.
형사(최희도 분)은 용의자로 부인을 지목해 법정에 세우지만 권력의 추악한 뒷거래와 민낯은 무죄를 선고하며 조선인 하녀 마리아의 죽음은 실종된 채 끝이 난다. 한 세기 종착점에서 여전히< 그때 변홍례>의 교살살인사건이 유예한 것은 살점을 파고드는 인간의 추악한 욕망과 권력의 민낯들이 반복 되고 있기 때문이다. 갑질사건, 정의의 부재, 진실의 실종, 추악한 권력, 인간 탐욕과 욕망은 여전히 동시대를 비추고 있다. 당시 시대적으로 ‘갑’과 ‘을’의 관계였던 일본인과 조선인이 연류 된 ‘조선인 처녀 마리아 교살살인사건’은 기업의 폭력적인 ‘갑질사건’ 과 빗나간 욕망으로 눈 먼 자들이 벌이는 추악한 살인행위의 현실사회 풍경과 오마주 된다.
여전히 죽음의 진실은 실종되고, 인간의 탐욕과 욕망은 숨을 죽이고, 보이지 않는 추악한 권력의 거래는 판결의 진실이 실종된 사회를 겨냥 한다. 연출은 철도회사 대교사장 동정뉴스를 영상으로 투사하면서 마치 모 항공회사 부인과 자녀들의 갑질 사건으로 유명한 장면을 환기시키며 대기업과 근로자의 종속적인 갑과 을의 사회를 조롱한다. 극의 마지막은 판사가 최종 판결 전 전화를 받고 일본인 부인을 향해 무죄를 선고하는 장면은 대기업의 특혜의혹, 기업과 권력의 유착, 법과 정의가 모호한 불신의 현실사회를 겨냥 한다. 극단 하땅세의 <그때 변홍례>는 마리아의 죽음을 통해 인간의 탐욕과 욕망 그 사이에 은폐되고 가려진 진실의 실종을 한 세기의 종착역에서 흑백 유성영화의 그 시절 영사기처럼 무대로 투사된다. 1930년대를 지나 한 세기를 마주하는 종착점에서도 여전히 비대해진 인간의 내면과 욕망의 살점들을 비춘다.
‘놀이’로 풀어내는 1930년대 <그때, 변홍례>
무대는 1930년대 조선인 처녀 마리아(변홍례)가 일본인에 의해 살해 된 교살사건을 다루는 영화처럼 연극은 영화촬영장 분위기를 형성한다. 무성영화처럼 배우들은 죽음의 진실과, 변홍례의 삶을 놀이로 장면화 시키고 행동과 말투는 1930년대 신파조와 그 시절 말투로 표현된다. 극중 인물 변홍례(이수현 분)는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옥의 말투처럼 표현하고 때로는 극중 인물 행동이 과장되어 보인다. 시대의 특징을 현대적으로 살려낸 배우들의 표현이 오히려 웃음을 살리고 극의 윤활유 역할을 한다.
배우들은 현대적인 변사로 분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극에 개입해 등장인물 대사를 여러 배우들이 맡아 전달한다. 극적 장면에 따라서는 등장인물 대사를 최소화함으로써 동시대로 투영되는 조선인 하녀 마리아 살인사건을 모던한 분위기로 살려낸다. 효과음도 마치 무성영화 후시녹음 현장처럼 비닐, 나무, 종이 등 다양한 소품들을 활용하면서 배우들이 무대에서 음향효과를 구현해 낸다. 마치 영화장면을 보면서 성우가 더빙을 하고 효과를 즉시적으로 표현해 내는 것처럼, 무대는 무성영화 촬영현장 같다.
배우들은 공연시작부터 무대로 나와 <그때, 변홍례> 공연 준비를 한다. 극단 배우들이 공연텍스트를 받고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놀이로 푼다. 배우들은 흰색 종이로 영상이 투사 될 수 있도록 중앙에 스크린을 설치하고 몸풀기와 간단한 선후배들의 대화를 통해 마치 극단 연습실 풍경을 그대로 그려낸다. 관객들은 “뭐지 이거. 공연하면서 무대가 손상돼 보수하나”하고 생각할 때 쯤, 배우 한명이 연극으로 만들 <변홍례> 이야기를 꺼낸다. 스크린에 비쳐지는 동아일보 기사를 보고 배우들은 변홍례 살인사건에서 특별하거나 모호한 단어들(하녀 변용례, 마리아, 탐정 소설 같은, 지적교사, 필사활동)를 찾아내고 이 단어들을 스크린에 투영해 무대는 1930년대로 변홍례 살인사건과 삶을 놀이로 전진하며 장면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이번 무대에서 극장조명을 사용하지 않는 것도 인상적이다. 스탠드백열등은 소품이 되고, 등장인물 내·외면을 투사하는 감정 조절장치로 다변화 시키는 기능을 한다. 배우들은 무대를 종횡무진 하며 인물의 감정과 분위기를 스탠드 백열등으로 장면 분위기를 만들고, 인물의 감정의 크기를 조절하거나 밝히며 스크린으로 그림자를 투영해 인간의 감추어진 내외면의 감정과 욕망을 흑백으로 조절한다. 한 세기의 시간을 흑백으로 되돌려내는 흥미로운 연극적 놀이 발상이다.
스탠드 백열등을 들고 움직이는 배우들은 영화 카메라 기능을 한다. 장면으로 투사된 극중 이미지를 다양한 영상의 분할과 편집성을 무대로 형성시키며 놀이를 통한 다양한 영화적 분위기를 무대로 활용하는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배우들은 움직이는 발소리, 동작, 인물의 감정과 대사 톤을 변사로 분해 음폭을 만들고, 효과음도 무대 현장에서 생생하게 전달해 극적 효과를 입체감 있게 극대화 시킨다. 놀이로 죽음의 진실을 추격하는 연극 <그때, 변홍례>는 흑백영화처럼 무대를 흡수하며 놀이로 반전을 이룬다.
이러한 장치들을 걷어내고 극적 갈등으로만 사건을 나열하고 무대를 끌고 갔다면 반감되었을 텐데 극단 하땅세 특유의 놀이정신으로 연극과 영화요소를 놀이로 융합해 무대를 흑백영화 장면처럼 풀어낸 것은 윤시중 연출의 발상과 시선이 참신하다.
또한 무대 조명을 극히 제한하고 스탠드 백열등으로 장면과 감정분위기를 조절한 것은 <그때, 변홍례> 이야기를 ‘어떻게 표현해 낼 것인가’라는 극단의 탐구적이고 실천적인 작업들이 1930년대 사건을 현재적으로 입체감 있게 살려내는 역할을 했다. 내면으로 투사되는 인물의 욕망과 감정을 무대 스크린으로 역 투사해 그림자로 형성 시키는 것도 돋보였다.
특히 취조실 장면과 용의자 추격 장면에서 스탠드 백열등은 자동차 헤드라이트 기능을 하며 입체감 있는 장면을 만들고 연출은 효과음향의 볼륨을 높이며 인상적으로 그려냈다. 마지막 장면이다. 법정 장면으로 바뀐다. 권력에 가려진 진실, 판사가 누군가로부터 전화를 받고 변홍례 사건 가해자(부인)에게 무죄가 선고된다. 권력에 실종된 채 사라져 가는 진실성을 그려내고 스크린은 변홍례의 죽음을 도려낸 칼자국으로 선명해 진다. 마리아 변홍례의 죽음과 사건은 한 세의 종착역에서도 의미가 크다. 인간의 탐욕과 욕망은 비대해지고, 기업과 권력의 민낯은 거세진다. 정의와 진실은 모호함과 실종됨으로 동시대 바다에 떠 있고, 진실은 침몰되어 있다. 추악한 인간의 숨결은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여전히 칼자국이 선명한 사회다.
이번 무대는 연출의 참신한 시선과 극단 하땅세의 놀이정신으로 풀어낸 1930년대 실제 <그때, 변홍례>의 사건을 재조명한 무대표현 형식이 참신했고, 배우들도 체득된 놀이로 무대를 그려냈다. 배우 전공자들이 꼭 한번 볼만한 연극이다. 그러나 연극에서의 놀이 활용은, 규칙이 무너지면 의미는 무뎌지고 게임방법과 놀이만 남게 된다. <사진제공:사진작가 이은경>
▶극단 하땅세와 연출 윤시중
극단 ‘하땅세’는 ‘하늘을 우러러보고, 땅을 굽어보고, 세상을 살펴본다’ 라는 의미다. 극단 하땅세는 장르를 초월한 다양한 연극 만들기를 시도 하고 있으며, 아동청소년극도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공연하고 있다. 공연작품으로는<타이투스>, <하땅세>, <천하제일 남가이>, <파리대왕>과 가족극<세상에서 제일 작은 개구리 왕자>, <붓바람>, <거인이야기>등을 선보여 왔으며 다양한 관객층을 형성하고 있다. 윤시중 연출은 지난해 <위대한 놀이>를 통해 ‘제10회 대한민국연극대상’, ‘올해의 베스트 3’, ‘한국연극 공연베스트 7’에 선정되었으며 국내외 연극제에서 작품상, 연출상, 연기상 등을 수상했다.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