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아이들 도벽

입력 2018-06-05 08:48

A는 초등학교 6학년 남자아이다. 친구들에게 무언가를 사 주기 위해 집에서 엄마, 아빠, 형의 돈을 슬쩍 가져가더니 이제는 문방구 등에서 물건을 훔치기도 한다고 했다. A는 유치원, 저학년 때도 가끔 이런 일이 있어 심하게 야단을 맞고 매를 맞기도 했으나 개선되지 않고 좀 더 과감해져 갔다.

엄마는 아이의 문제를 남편하고 상의하기도 힘들었다. 전업 주부로 아이의 양육을 도맡고 있는 자신에게 남편의 질책과 비난이 쏟아질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또 자존심 때문에 친구나 친정에도 얘기하지 못하고 아이와 공모(?)하여 감춰 왔다. 문방구에서 훔친 물건을 주인에게 되돌려 줘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소문이 나서 ‘도둑질 한 아이’로 낙인찍힐 게 두려워 돌려주지 못한 체 넘어갔다. 평생 A와 엄마만의 비밀로 간직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건 엄마의 생각일 뿐 비밀은 없었다. 아이의 도벽은 이미 학교의 친구들 학부모들이 모두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것이다. 아빠도 아이의 도벽 사실을 알았을 때 오롯이 엄마의 책임으로 엄마를 비난했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A는 ‘피해야 할 친구 1호’가 되어 있었다.

4~5세 이전에는 ‘훔치는 행동이 나쁜 것’ 이란 개념이 없을 수도 있다. 소유의 개념도 없고 내 것과 남의 것의 경계도 모호하다 이때는 이런 행동을 너무 나무라기 보다는 잘 가르쳐 주는 게 필요하다.

사춘기 전후의 아이들은 자기를 과시하고 으스대기 위한 도벽도 있다. 친구들이 못하는 행동을 과감하게 해서 용감하게 보이고 강하게 보이고 싶은 마음에서다. 또 가족 간에 갈등이 있을 때 갈등의 완화제로 자신의 문제를 중지하지 못하고 반복하는 유형도 많다. 결핍감이나 우울함, 공허함을 채우기 위한 도벽, 친구를 사귀지 못하고 위축되어 있는 아이들이 돈이나 물질을 친구 사귀는 도구로 사용하는 수도 있다.

가족의 도덕성에 문제가 있어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부모가 은연 중에 하고 아이가 이를 학습하는 경우도 있다.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와 경계선 성격 장애 같은 정신의학적인 문제로 아이가 충동 조절의 어려움이 있어 소유하고 싶은 욕구를 조절하지 못해 물건을 훔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도벽의 원인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원인에 따라 대처도 달라야 한다. A의 엄마는 가부장적인 아빠에 불만이 많고 우울하며 아이만 아니면 이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이 마음은 아이에게도 전달되었다. 불행한 엄마로 인해 위축되었던 아이는 엄마나 친구들의 관심을 받고 싶었다. 엄마, 아빠의 지갑에서 돈을 슬쩍하여 친구들에게 먹을 것을 사주곤 하니 친구가 따른다는 걸 알게 된 후엔 이 행동이 강화되었다.

근데 친구들이 따르는 건 일시적일 뿐이니 친구들의 관심이 멀어지면 도벽을 다시 하는 식으로 행동이 반복되었다. 엄마는 아이의 도벽 때문에 미칠 것 같았다. 늘 감시의 눈으로 아이를 지켜봐야 했고 관심을 늦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남편에 대한 불만은 뒷전이 되고, 아이를 감시하는데 온갖 신경이 집중되었다. 아이가 원했던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었다.

아이가 도벽을 하고 있다면 화나는 감정, 두려운 감정을 추스르고 아이가 정직하게 피해자를 만나 사과하고 물건을 되돌려 주는 방식으로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 A의 엄마처럼 비밀로 하고 감추어지길 바란다면 아이도 엄마의 비겁한 행동을 그대로 배우게 될 뿐더러 영원한 비밀도 없다. 남의 시선보다는 부모 자신이나 아이의 마음에 집중해 보자. 아이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부부간에 솔직하게 대화도 나누어 보고, 가족을 잘 아는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의 조언도 들어보자. 때로는 제 3자가 우리 자신보다 가족의 문제나 아이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보기도 한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