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떨어져 죽어, 신고해놓을게” 다그친 내연남… ‘자살교사’ 징역 2년

입력 2018-06-05 00:05

“죽어. 빨리 떨어져 죽어. 내가 119에 신고해 놓을게.”

대판 싸우다 밖으로 나간 최모(37)씨의 고성이 휴대전화 너머로 들려왔다. 그는 “내가 일단 너네 엄마 아빠한테 전화해 (너의 불륜사실을 알려) 놓을게”라고 협박했다.

최씨와 동갑인 송모(여)씨가 불륜을 실토한 통화 녹음 파일은 지인들이 있는 SNS 네이버 밴드의 공개 채팅방에 폭로된 상태였다. 송씨는 절망감에 빠졌고 가족에게 불륜 사실이 전해질 것이란 수치심에 몸을 떨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고마웠어. 진짜로 119 신고해줘. 미안했다”였다. 최씨는 송씨와 마지막 통화한 내용까지 녹음해 모두 밴드에 올렸다.

이들은 2016년 10월 동갑내기들의 친목을 위한 밴드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최씨는 송씨가 유부녀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연관계에 빠져들었다. 지난해 6월 여느 때처럼 밀회하던 중 최씨는 송씨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게 됐다. 송씨가 밴드 모임의 다른 남성들과도 성관계를 한 사실을 추측하게 하는 내용이었다. 격분한 최씨는 송씨에게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릴 것을 종용했다. 불륜사실을 인정한 녹음 파일을 문제의 밴드에 올렸고 부모에게도 알리겠다며 몰아붙였다. 송씨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판사 김대웅)는 자살교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최씨에게 1심과 같이 징역 2년을 선고했다고 4일 밝혔다. 재판부는 최씨가 송씨를 자살에 이르게 할 확정적 고의가 없었더라도 미필적으로나마 자살을 예상했다면 자살교사죄가 성립한다고 봤다. 형법 252조는 사람을 교사 또는 방조해 자살하게 한 경우 징역 1∼10년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최씨는 1심에서 “송씨가 먼저 투신하겠다 말했고 나는 마음대로 하라고 했을 뿐”이라며 “실제로 자살할 것이라 예상 못했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항소심에서도 “징역 2년형은 너무 무겁다”고 항변했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먼저 자살을 결심한 것으로 볼 수 없고 ‘빨리 떨어져 죽어라. 부모한테도 알리겠다’고 말한 게 결정적 원인이 됐다”고 판단했다. 이어 “피해자와 불륜 관계를 맺었던 다른 남성들에게 ‘18층에서 뛰어내린대’ ‘친구 살릴 거면 가 봐라’고 연락하는 등 미필적으로나마 자살 가능성을 예상했다”고 지적했다.

항소심의 판단도 같았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극도의 절망감과 수치심 속에 생명을 포기하게 만들고 유족에게 평생 치유하기 어려운 정신적 충격을 줬다”며 “징역 2년형이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