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판사들이 4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옛 행정처 책임자들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를 촉구한다”는 결의안을 속속 내놨다. 검찰의 수사 착수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반면 법적 안정성에 무게를 두는 고위 법관들도 판사회의 개최를 예고하며 사법부 내 의견 차이도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전국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은 오전부터 직급별 판사회의를 연이어 열었다. 80여명의 단독판사들이 가장 먼저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대해 성역 없는 철저한 수사를 통한 진상규명을 촉구한다”고 의결했다. 이어 “대법원장은 향후 수사와 그 결과에 따라 개시될 수 있는 재판에 관해 엄정한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 전 대법원장 등의 기소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수사와 관련한 김명수 대법원장의 의견 표명 요구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간 접수된 고발장 만으로도 충분히 검찰이 수사에 착수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단독판사회의에선 김 대법원장이 고발 주체가 될 경우 ‘셀프 고발’ 논란이 추가로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고 한다. 김 대법원장이 나서는 것 자체가 수사·재판 가이드라인이 된다는 논리다. 검찰은 대법원 차원의 공식적인 고발이나 수사의뢰 없이는 본격 수사에 착수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서울가정법원 단독·배석판사들도 회의를 열고 “성역 없는 엄정한 수사를 촉구한다”고 의결했다. 이들은 “행정처는 사법행정권 남용 특별조사단의 조사 결과 드러난 미공개 파일 원문 전부를 공개하라”는 요구 사항도 덧붙였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들도 이례적으로 판사회의를 열었지만 의견이 모이지 않아 휴정했다. 검찰 수사 촉구 등 사태 수습 방안을 놓고 내부 인식차가 있었다고 한다. 차관급 고위 법관인 서울고법 부장판사들 역시 5일 판사회의를 개최할지 여부를 논의했다.
윤종구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 전산망에 글을 올려 “법치 행위는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하는 행위가 아니다. 때로는 멈춤, 머무름이 요구되는 영역”이라며 사태 수습을 촉구하기도 했다. 한 법관은 “지법 부장판사나 고법 부장판사 가운데는 행정처 근무 경험이 있는 법관들이 다수”라며 “행정처 근무 경험이 없는 법관들과 비교했을 때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김 대법원장은 법원 안팎의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그는 출근길에 “현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현명한 의견들이 많이 제시됐으면 좋겠다”며 “의견을 가감 없이 들은 후 입장을 정하겠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KTX 해고 승무원, 키코(KIKO) 공동대책위원회 등과 함께 “사법 농단·재판 거래 피해자들과 함께 5일 양 전 대법원장을 공동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양민철 구자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