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 소방관 등 제복공무원들이 시민에게 폭언과 구타를 당하는 상황이 갈수록 심각해지자 정부가 대응에 나섰다. 제복공무원에 대한 부당한 행동을 자제해 달라고 ‘호소’하며 엄벌로 대처하겠다고 선언했다.
행정안전부와 경찰청, 소방청, 해양경찰청은 4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대국민호소문을 발표했다. 제복공무원에 대한 폭행은 중대한 불법 행위이며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네 기관은 “제복공무원들이 현장에서 이유없는 반말 욕설 등 일부 국민의 분노 표출과 갑질 행위로 고통받고 있다”면서 “앞으로 이 같은 불법 행위에는 비례원칙과 적법절차에 따라 보다 적극적이고 당당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복공무원에 대한 폭행은 국민 인권을 침해하는 중대한 불법 행위로 간주하겠다”고도 했다.
정부는 폭행 피해 방지 개선책을 마련했다. 경찰과 해경은 경고·제지 불응자에 대해 경찰 장구를 적극 활용키로 했다. 집단 폭력 등이 발생할 경우에는 형사전담체계를 통해 대응에 나선다. 경찰관 폭행 시 과태료 부과에 그치지 않고 벌금형 선고될 수 있도록 정식 입건한다. 제복공무원의 신체적 피해에 대해서는 직무집행 손실보상을 확대할 방침이다.
그간 경찰과 함께 폭언·폭행의 대상이 된 소방관들도 전자충격기나 최루액 분사기 등 호신장구를 사용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키로 했다.
경찰관 소방관 등 제복공무원에 대한 폭언·폭행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15일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저는 경찰관입니다. 국민 여러분 제발 도와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자신을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20대 남성 경찰관이라고 소개하며 “지금까지 112 출동해서 5번의 폭행을 당했고 3년간 술취한 시민들에게 아무 이유 없이 20번 넘게 매를 맞았다”고 토로했다. 법적 지원과 공권력 강화를 주문한 이 청원은 4일 오후 현재 5만8776명의 동의를 얻었다.
지난해 경찰청에서 실시한 ‘주취폭력·공무집행방해사범 특별단속 결과’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발생한 폭력사범 37만8000여명 중에서는 11만9000여명(31.5%)이, 공무집행방해사범 1만5000여명 중에서는 1만여명(71.4%)이 주취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이 공무 중 부상당한 402건 중 317건(78.9%)은 주취자 범행이었다(2015년 기준).
구급대원이나 소방관 등에 대한 폭행도 자주 지적돼 왔다. 지난달 1일에는 취객에게 폭언·폭행을 당한 소방관이 두통, 구토, 불면, 딸꾹질 증세를 보이다 뇌출혈로 쓰러져 사망했다. 당시 숨진 강연희 소방사의 동료 정은애 119안전센터장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강 소방사가) 부모 욕이나 성적인 비하 발언을 반복해 들었고 그 욕설이 계속 귀에 맴돌아 힘들다고 얘기했다”면서 “폭언이나 폭행을 당했다고 쉴 수 있는 처지가 아니어서 다시 현장으로 나가는데 이는 공무원에게 엄청난 두려움이고 스트레스”라고 밝혔다.
이날 발표된 호소문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행안부 관계자는 “폭행에 대한 처벌이나 대응 장비를 강화하는 것보다 제복공무원의 사명을 존중하는 사회적 인식을 형성하는 것이 시급하고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종형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