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어디 땅 살 곳이 없어서 도곡동에… 더 좋은 곳 있었다”

입력 2018-06-04 12:47
'다스 의혹' 이명박 전 대통령이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2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110억원대 뇌물수수와 350억원대 다스 횡령 혐의로 구속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두 번째 공판에서 ‘도곡동 땅’을 언급했다. 이 전 대통령은 맏형 이상은 다스 회장 등을 내세워 도곡동 땅을 차명 소유하고 매각대금도 차명으로 관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은 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정계선) 심리로 열린 2차 공판에서 발언권을 얻었다. 이 전 대통령은 “근래에 문제가 되고 나서 보니 (도곡동 땅이) 현대가 가지고 있던 체육관 경계에 붙어 있는 걸 알게 됐다”면서 “내가 현대 7~8개 회사 대표를 맡았다. 정주영 전 회장의 신임을 받고 일하던 사람이 어디 살 데가 없어서 현대 땅과 붙은 곳을 사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압구정이나 강남에 땅 살 곳 얼마든지 있었다. 내가 현대건설 재임 중에 개인적으로 부동산 투자를 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 덧붙였다.

이 전 대통령은 “검찰이 내가 투자한 것이라고 가정한 채 수사하고 있다”며 “현대에 있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땅을 매입하거나 투자)하려면 더 좋은 곳에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재판부가 “다스 협력업체인 세광공업 노조 갈등 당시 울산공장에 내려가 회의에 참석한 일은 기억하느냐”고 묻자 “그런 기억이 없다. 작은 회사에 노조가 있었다, 없었다 할 위치가 안 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 회사에 그런 게 생겼다고 해서 보고를 받고 할 그 정도 사람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건강상태가 좋지 않음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은 “건강 문제를 숨기고 평생을 살았지만 교도소에 들어오니까 감출 수 없게 됐다”며 “(구치소에서) 진찰을 받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나는 버틸 때까지 버텨보려 한다”고 말했다. 재판부가 “치료를 받으면서 나오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자 이 전 대통령은 “그러면 특별대우를 받았다는 여론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공판은 오전 10시쯤 시작됐다. 이 전 대통령은 “이러다 쓰러지고 못 나오는 것보다 낫지 않느냐. 도리가 없어서 말씀드린다. 죄송하다”며 휴정을 요청했다. 재판부는 이에 오전 10시50분쯤 “11시까지 5분만 쉬겠다”고 밝혔다.

이 전 대통령 측은 지난달 23일 1차 공판 이후 건강상 이유로 재판에 선별적으로 출석하겠다는 입장이 담긴 ‘불출석 사유서’를 제판부에 제출했다. 같은 달 28일 열린 두 번째 재판에 참석하지 않았다. 당시 재판부는 이 전 대통령 변호인 강훈 변호사를 향해 “피고인은 모든 기일에 출석해야 한다고 명령한다. 다시 불출석할 경우 형사소송법 규칙에 따라 절차를 밟겠다”고 경고했다. 재판부는 앞으로 매주 두 차례씩 열릴 이 전 대통령 재판에 수시로 휴식시간을 제공하고 오후 6시 이후엔 가급적 재판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