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70)이 특별조사단의 조사 결과에 대해 “여러가지 컴퓨터를 남의 일기장 뒤지듯이 봤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검찰 수사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 때 가서 보자”며 즉답을 피했다.
양 전 원장은 1일 오후 2시9분쯤 경기 성남시 수정구 자택 인근 놀이터에서 입장을 밝힌 후 취재진의 질문에 이 같이 말했다. 양 전 원장이 퇴임 이후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와 관련해 공식 입장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지난해 3월22일 6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양 전 원장은 무더위 속에 청색 정장에 회색빛이 나는 도트 무늬 넥타이를 매고 취재진 앞에 섰다. 그는 "한계점을 밝히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다"라고 운을 뗀 뒤 본인을 둘러싼 의혹들을 해명했다.
양 전 원장은 "법원이야말로 제 인생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뭘 반박하려는 것이 아니다" "갈등을 무마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다" "왜곡이 있을 수 있다는 판단이어서,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분명히 해야 할 점을 말씀드리려고 나왔다"라고 밝혔다.
그는 "두 가지 명백히 짚어야할 것이 있다"라면서 "하나는 대법원장 재직하면서 대법원 재판이나 하급심 재판에 부당하게 간섭 관여한적 결단코 없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두 번째로 제가 상고법원 추진했던 것은 대법원 제 기능 다하기 위해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반대하는 견해도 당연히 있을 수 있다"라면서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이나 어떤 일반적인 재판에서 특정한 성향이 나타냈다고 해서 법관에게 어떤 편향된 조치를 하거나 불이익을 준적이 전혀 없다"라고 못박았다.
양 전 원장은 발언하면서 별다른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질의응답 과정에서 다소 민감하게 들릴 수 있는 질문들이 쏟아지기 시작하자 즉답을 피하면서 표정을 찡그리거나 시선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직접 조사를 받지 않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조사가 세 번 이뤄졌고 1년 넘게 진행됐다. 여러 개 컴퓨터를 흡사 남의 일기장 보듯 완전히 뒤졌고, 듣기로는 400명 정도의 사람들이 가서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랬는데도 사안을 밝히지 못했으면 그 이상 뭐가 밝혀지겠나. 제가 가야하느냐"라고 다소 불쾌감 섞인 목소리로 반문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보고나 중요하지 않은 보고는 금방 잊고, 사후에 보고하는 것도 있다"라고 발언한 뒤 '사법부에 비판적인 판사를 조사한 것은 일회성 보고이거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지 않나'라는 질문이 제기되자 "뒷조사 했다는 내용이 뭔지를 제가 확실히 알지를 못한다"라고 선을 그었다.
또 '대통령 국정 운영 뒷받침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문건'에 대한 물음이 나오자 "잘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 이상 묻지 말아 달라"라고 말을 아꼈으며, '불미스러운 일을 막지 못해 죄송하다고 했는데, 아래 분이 다 했다는 것인지'를 묻자 "무슨 내용인지 나중에 파악해서 말씀드리겠다"라고만 했다.
하지만 재차 문건 총책임자 등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자 그는 찡그린 표정으로 시선을 회피하면서 "그런 여러 사항에 대해선 제가 답변을 하지 않겠다" "다른 질문을 해 달라" 등의 답변으로 대응했다.
양 전 원장은 입장 발표를 마무리 지으면서 재차 "위원회에서도 문건이 여러 가지 있지만 뭔가 실행된 자료는 전혀 없다고 결론 냈다. 그럼에도 자꾸 재판이 잘못됐다는 쪽으로 왜곡 전파되고 있기 때문에 법관들은 기가 찰 일일 것이다"라면서 "모든 재판이 그런 식으로 간다면 이 나라가 유지되겠나"라고 강조했다.
이에 '문건 내용을 제대로 보지 않고 그런 말 할 수 있는 것인가. 모순되는 것 아닌가'라는 의문이 다시 제기되자 질문자를 외면하면서 "그럼 이상으로 마치겠다. 이 다음에 더 자세한 내용으로 얘기할 기회가 있길 바란다"라는 말을 남긴 뒤 자리를 떴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