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속 국가교육회의 대입제도개편 특별위원회가 31일 내놓은 공론화 범위를 보면 급격한 개혁보다 안정적 변화를 선택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정시와 수시의 통합은 ‘없던 일’로 물렸으며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절대평가로 전환하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은 사실상 철회된 것으로 보인다. 중학교 3학년이 치르는 2022학년도 입시제도는 현 입시제도의 큰 틀을 유지할 가능성이 커졌다. 다만 수능 점수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정시의 비율은 조금 높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수능 절대평가 사실상 철회
특위가 정한 공론화 범위는 세 가지다. 정시와 수시의 적정 비율(학생부 위주 전형과 수능 위주 전형 비율)과 수능 절대평가 전환, 수능 최저학력기준 활용 여부 등이다. 정시와 수시의 비율과 관련한 논의는 정시 비율이 지나치게 낮다는 학부모 불만에서 출발했다. 정부와 여당은 이런 불만을 받아들여 정시를 늘리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정시와 수시 비율을 정하는 일은 수능을 상대평가로 유지한다는 의미로 해석 가능하다. 수능이 절대평가가 된다면 정시와 수시 비율을 정하는 게 무의미하다. 수능이 절대평가로 전환된다면 상위권 변별력 때문에 정시 비율이 급격하게 축소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수능 절대평가 전환과 정시와 수시의 적정비율 논의가 상충된다는 지적에 김진경 특위 위원장은 즉답을 피했다.
특히 절대평가 전환 시 변별력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검토됐던 원점수 제공 방안이 모두 철회됐다. 당초 교육부는 절대평가 전환 시 수능 100% 전형에 한해 원점수를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대입 특위는 “적용 가능성 등에 의문이 제기되며 별도의 전문적 검토가 필요한 사항으로 판단해 (공론화 범위에서) 제외했다”며 “향후 교육부에서 필요한 경우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전 과목 절대평가로 인한 변별력 문제를 해결할 몇 안 되는 방안으로 꼽히던 대안을 사실상 대입개편 논의에서 제외한 것이다.
입시 전문가들은 국가교육회의가 전 과목 절대평가를 밀어붙일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세밀한 보완책 없이 절대평가를 도입할 경우 학생, 학부모 및 학교 현장의 혼란과 함께 지난해와 똑같은 반발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수능 최저학력기준 새 쟁점
수능 절대평가 전환 가능성은 희박해지고 정시·수시 통합도 철회됐다. 정시와 수시의 적정비율은 정시를 소폭 늘리는 것으로 그칠 전망이다. 정시를 급격하게 늘릴 경우 새 교육과정(2015 개정 교육과정)과 호환 문제가 생길 뿐만 아니라 고교 교실이 파행할 것이란 교육계 우려가 적지 않다. 정시를 늘려달라는 요구를 일부 수용하는 선에서 2022학년도 대입 개편은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관건은 수능 최저학력기준과 수능 과목 개편이다. 수능 최저학력기준 폐지 여부는 시민참여단 400명이 정하는 공론화 과정을 밟아 결정된다. 수능 최저학력기준이 없어진다면 대입에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이 경우 수능의 영향력은 상당히 줄어들게 된다. 수시 모집에 합격한 수험생이 굳이 수능을 치를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수시와 정시 비율이 현재 7대 3 수준이기 때문에 수능 응시자가 대폭 줄어들 수도 있다.
또한 수능 과목과 범위를 조정하는 부분도 수험생 입장에선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국가교육회의는 수능 과목 조정을 교육부 결정 사항으로 다시 넘겼다.
교육부가 주요 결정사항을 국가교육회의에 넘기고 다시 국가교육회의가 교육부에 결정을 넘기는 ‘핑퐁 게임’을 했다는 비판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학생부종합전형의 신뢰도 제고 방안과 수능 과목 조정 등을 국가교육회의가 다시 교육부로 넘기면서 시간 낭비만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능 절대평가와 정시와 수시 통합 등 대대적인 대입제도 개편은 2025학년도 이후에 적용하는 중장기 대입제도 개편에서 다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문 대통령의 핵심 교육 공약인 고교학점제에 연동하는 대입제도 개편을 고민하고 있다. 고교 내신절대평가가 전제인 고교학점제를 도입하려면 대입제도 개편이 필수적이라는전망이 많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