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대필 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했던 강기훈씨에 대한 국가의 배상책임이 항소심에서도 인정됐다. 1심에서 8억6000만원이던 손해배상금은 11억여원으로 늘어났다.
서울고법 민사4부(부장판사 홍승면)는 31일 강씨와 그의 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강씨에게 8억원, 아내와 부모님에게 각각 1억원씩 지급토록 했다.
강씨는 1991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에서 간부로 활동하면서 후배 김기설씨의 분신자살을 방조하고 유서를 대필한 혐의(자살방조)등으로 징역 3년의 형을 확정 받고 만기출소했다. 강씨는 재심을 청구해 2015년 24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후 국가와 당시 수사검사였던 강신욱 전 대법관 및 심상규전 검사장, 필적 감정인 김형영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1심에서는 국가와 김씨의 손해배상 책임만 인정했다. 수사기관이 허위로 필적감정을 하도록 조작한 점에 대해서는 증거가 없다고 봤다. 수사과정에서 폭언이나 강압수사 등 검사들의 불법행위가 있었지만 소멸시효가 완성돼 검사들에게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불법행위가 이뤄진 날로부터 10년 안에 손해배상 청구권을 행사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과 판단을 대부분 같이 했다. 다만 김씨의 손해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검사들과 마찬가지로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이유다. 1심은 필적 감정을 제대로 하지 않은 김씨 과실을 인정했다. 김씨 잘못으로 강씨가 손해배상 청구권을 행사하지 못했기 때문에 소멸시효를 주장할 수 없다고 봤다. 하지만 항소심은 “강씨가 장기간 권리를 행사할 수 없었던 배경에 필적 감정인에게 책임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강씨는 당시 27세의 나이에 수감돼 주위로부터 지탄을 받는 등 장기간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의 국민소득수준이나 통화가치 등의 사정이 1991년에 비해 상당한 정도로 변동한 점을 고려했다”고 손해배상금을 증액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유서대필 사건’ 강기훈씨, 항소심에서도 승소…배상금 8억에서 11억원으로
입력 2018-05-31 16:32 수정 2018-05-31 16: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