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남편 때려 숨지게 한 70대 아내… 법원 판단은

입력 2018-05-30 11:18 수정 2018-05-30 11:20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수십 년간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70대 여성이 또다시 자신을 때리는 남편을 지팡이로 때려 숨지게 한 사건에 대해 법원은 살인죄가 아닌 상해치사죄를 적용,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법원과 국민참여재판 배심원들은 장기간 가정폭력에 시달려오던 부인이 사건 당일에도 남편의 폭력적 행위에 대항하다 일어난 우발적 범행으로 보고 부인의 살인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광주지법 제11형사부(부장판사 송각엽)는 살인(인정된 죄명 상해치사) 혐의로 기소된 A(76·여)씨에 대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고 30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12월9일 오전 10시쯤 자녀의 집에서 남편 B(당시 79세)씨와 말다툼을 벌이다 B씨를 넘어뜨린 뒤 빼앗은 네발 지팡이(총 길이 84㎝·철제 발 부분 19㎝)로 B씨의 머리를 내리치고 발로 가슴을 밟아 골절 등의 상해를 입히고 그 무렵 사망하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앞서 B씨가 욕설하며 네발 지팡이를 들고 자신을 때리자 화가 나 B씨와 실랑이 하는 과정에 이 같은 일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B씨는 오래전 뇌졸중으로 쓰러져 치료를 받아오다, 최근 고관절 수술을 받고 치매 판정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경찰 조사에 "수십 년 간 남편이 술을 마시고 폭행·폭언을 일삼으며 괴롭혀 왔다. 최근에도 남편의 폭력으로 치아를 다쳤지만 가정을 위해 참았다. 수사기관에 처벌 의사도 밝히지 않았다"는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판부는 "A씨가 함께 거주하던 남편인 B씨를 때려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존귀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범죄는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는 점에서 죄질이 좋지 않다"고 밝혔다.

다만 "A씨가 B씨로부터 장기간 가정폭력에 시달려 왔던 사실, 이 사건 범행 또한 A씨가 B씨의 폭력적 행위에 대항하는 과정에 우발적으로 저지른 것으로 보이는 점, 유족들은 A씨에 대한 선처를 간곡히 탄원하고 있는 사실, 배심원 양형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A씨의 주위적 공소사실인 살인 혐의에 대해서는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이번 재판에서 배심원 6명은 A씨에 대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3명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의 양형의견을 냈다.

배심원 평결 결과 9명 모두 'A씨에게 살인의 고의는 없었다'는 판단을 내렸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