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양승태 대법원, 세월호 사건 ‘특정 재판부’에 맡기려했다

입력 2018-05-29 17:36 수정 2018-05-29 17:52
검·경 합수부가 선장 이준석씨 등 기소하기 이전에 보고서 작성
“자신들이 신임하는 법관에게 맡겨 재판 컨트럴하려 했다 의심”
특조단, “부적절” 판단하고도 별지에 제목만… 자체 조사 한계


양승태(사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세월호 참사 책임자 재판의 관할 법원을 바꿔 특정 재판부에게 심리를 맡기는 방안을 검토했던 것으로 29일 확인됐다. 이 시점은 세월호 침몰 사고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선장 이준석씨 등을 재판에 넘기기도 전이었다.

사법행정권 남용 특별조사단은 해당 문건을 찾아내 검토한 뒤 “부적절하다”고 판단했음에도 조사보고서에 세부 내용을 기록하지 않고 별지에 문건 제목만 첨부했다. 사법부 자체 조사의 한계를 다시 한 번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조단이 행정처 컴퓨터에서 발견한 ‘세월호 사건 관련 적정 관할 법원 및 재판부 배당 방안’ 문건에는 당시 세월호 재판을 어느 법원에 배당할지 행정처가 사전 검토한 내용이 담겨있다. 행정처 기획조정실이 문제의 보고서를 작성한 시점은 2014년 5월 5일로 돼 있다. 같은 해 4월 17일 구성된 검·경 합수본은 5월 15일 선장 이씨 등 15명을 구속 기소했다. 당시 기조실장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었다.

세월호 사건의 최초 관할 법원은 목포지원이었다. 특별조사단장인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취재진에게 “목포지원의 규모 상 큰 사건 재판을 감당할 수 없어 광주지법과 인천지법 중 어느 법원에서 사건을 할지 검토한 내용”이라며 “사법행정의 정상 업무라고 할 수 있어 공개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행정처는 세월호 사건을 인천지법에 배당하는 동시에 신광렬 당시 인천지법 수석부장판사(현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재판장으로 한 일종의 특별재판부를 구성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다. 인천지법에 3개의 형사합의부가 있음에도 별도의 재판부를 꾸리려 한 것이다. 광주지법에 사건을 배당하는 안에는 특정 재판부까지 지목돼 있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기소된 사건의 관할 문제나 이송 여부를 판단하는 건 사건을 맡은 재판부가 판단할 몫이다. 재판부가 행정처에 지원을 요청해도 기조실이 아닌 사법지원실에서 검토할 사안이다. 이 때문에 특조단도 이 같은 검토가 “기본적으로 부적절했다”고 봤다.

특조단 관계자는 “세월호 참사가 국민적 관심 사안이라 기조실에서 인천지법에 재판부를 추가로 만들어 사건을 담당하게 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은 사실”이라며 “다만 조사단의 규명 대상인 사법행정권 남용과는 관련성이 낮다고 판단해 그 내용을 공개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특조단은 당시 행정처가 문건을 작성한 경위 및 배경은 별도로 조사하지 않았다. 특조단 측은 “별도의 의혹 대상으로 삼을 만큼의 의미는 없다고 봤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판 관할 법원·재판부 교체 검토 이면에 정치적 판단이나 거래는 없었는지를 규명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고위법관 출신 변호사는 “행정처가 자신들이 신임하는 특정 법관에게 사건을 맡겨 재판 상황을 컨트롤하려 했다는 의심도 살 수 있는 내용”이라고 평가했다.

김진숙 민중당 서울시장 후보는 이날 양 전 대법원장 등 15명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는 30일 양 전 대법원장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자들을 검찰에 고발할 계획이다.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들과 서울가정법원 판사들은 다음 달 4일 이번 사태를 안건으로 회의를 열기로 했다.

양민철 신훈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