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은 하나님의 사랑을 무효화 한다’ VS ‘하나님의 사랑은 고난을 극복하게 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이 삶 속에서 수없이 경험하는 딜레마다. 세계적 석학인 미로슬라브 볼프 미국 예일대 석좌교수는 두 가지 관점을 성경 속 바울을 통해 조명했다. 또 ‘우리는 어떻게 고난을 극복하고 이길 수 있는가’에 대한 접근법을 제시했다. 29일 서울 중구 경동교회(채수일 목사)에서 열린 제11차 국제실천신학심포지엄이 그 무대였다.
볼프 교수는 “지속적 혹은 극심한 고통을 경험할 때 우리는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주장을 의심하게 된다”며 “특히 무고한 자들의 고난을 지켜보면서는 ‘하나님은 무력하고 잔인하다’고 비난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무고한 자들이 고난 받는 상황은 무신론자는 물론 유신론자에게도 신의 존재를 의심케 하고, 자신의 신앙을 부정하거나 나아가 분노를 표출하게 하기도 한다. 볼프 교수는 욥기를 통해 ‘무고한 자의 고난’에 대한 네 가지 접근 방식을 소개했다. ‘하나님의 실재를 부인하는 것’ ‘고난 받는 자들을 비난하는 것’ ‘하나님께 불평하는 것’ 그리고 ‘침묵’이다. 그는 네 가지 중 욥기의 요점으로 ‘침묵’을 꼽았다. 그러면서 “욥의 침묵은 고통으로 인한 공포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세계와의 관계 앞에서 ‘이해하지 못함’의 표현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볼프 교수는 고난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그로 인해 나타난 현상도 짚었다. 그는 “질병의 치유, 국가의 안보처럼 현대인은 우리의 삶에서 모든 고난을 제거하려고 노력해 왔다”면서 “이 과정에서 기술의 발달과 인류학적 낙관주의가 결합해 고난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착각하는 오류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바울의 시각에서 현시대를 구성하는 두 가지 특성 때문에 고난은 사라질 수 없다고 역설했다. 두 가지는 ‘인류의 죄성’(롬 3:9)과 ‘부패하기 쉬운 성격’(고후 4:7)이다. 볼프 교수는 “이 둘은 서로를 강화시키고 고난을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든다”고 강조했다.
볼프 교수는 “세상의 도식 안에서의 지혜와 그리스도의 도식 안에서의 지혜는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 바울 신학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참된 지혜와 올바른 능력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고난을 통해 찾아야 한다”며 “이런 관점은 고난 받는 자들은 무고할 수 없다고 말하거나, 고난 받을 때 불평하며 하나님을 주어진 도덕적 틀에 묶어버리는 자세를 약화시킬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렇다면 ‘온종일 죽임을 당하는’(롬 8:36)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넉넉히 이기는 자’(롬 8:37)가 될 수 있을까. 볼프 교수는 “바울이 가장 주목했던 고난의 종류는 ‘박해’였으며 믿음을 실행에 옮기고 선포하는 일 때문에 박해 받는 것을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이해했다”고 했다. 이어 “만약 어떤 기독교인이 고난에 대해 하나님께 불평하려 한다면 자신이 기독교인인 것을 불평하는 것이 낫다”며 “그 고난은 자발적으로 떠맡은 것이자 ‘고난의 세상’을 ‘희망의 세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라고 설명했다.
박종화(경동교회 원로) 목사는 “볼프 교수는 고난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대신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극복하고 ‘이겨내야 할 대상’이라는 바울의 입장을 전하고 있다”며 “그리스도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승리한 하나님의 역사’이자 고난 극복의 핵심으로 밝힌다”고 논평했다.
이어 일상에서 경험하는 갈등과 고난의 상황에 비추어 볼프 교수의 바울 신학을 재조명했다. 박 목사는 ‘미투(#Me too) 운동’ ‘빈부 격차로 인한 갈등’ ‘강자와 약자 사이에서의 갑질 문제’ 등을 언급하며 “이념적 갈등, 복합적 이해관계에서 오는 갈등이 첨예화된 상황에서 항상 ‘힘없는 의로운 자’가 고난의 피해자가 되는 현실을 극복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라고 역설했다. 이어 “오늘날 어떤 이유로든지 박해받는 자들의 고난을 이기는 최상의 방법은 비폭력적 저항을 통해 폭력의 고리를 끊는 것”이라며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저항운동, 마틴 루터 킹의 민권운동, 우리나라 민주화 변혁을 가져 온 평화 촛불시위 등이 ‘비폭력의 선순환’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덧붙였다.
이날 포럼에 앞서 진행된 기도회에서 참석자들은 세월호 참사(2014), 대구 지하철 참사(2003) 삼풍백화점 붕괴(1995) 6월 항쟁(1987) 광주 민주화운동(1980) 4.19혁명(1960) 한국전쟁(1950) 등 우리나라가 근현대사에서 겪어 온 고난의 현장을 영상으로 확인하며 ‘교회와 성도들의 시대적 사명’ ‘나라의 평화’를 위해 기도했다.
행사를 주관한 실천신학대학원대 박원호 총장은 인사말에서 “바울 신학을 통해 아픔을 딛고 고난을 이겨낸 과정을 신학적으로 접근해 보고자 심포지엄을 마련했다”며 “볼프 교수의 메시지가 한국 사회와 교회의 지향점을 발견하는 기회로 선용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