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작가 “이제 ‘미투’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듯”

입력 2018-05-29 07:57
‘82년생 김지영’으로 유명한 조남주 작가가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사옥에서 신작 ‘그녀 이름은’에 대해 이야기하며 웃고 있다. 최종학 선임기자

한국 사회에서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의 시발점이 됐던 서지현 검사도, 연예계 페미니즘 논란을 달궜던 걸그룹 레드벨벳의 아이린도 조남주(40)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민음사)을 읽었다고 했다. 무려 70만명이 이 책을 읽었다. 이제 ‘82년생 김지영 세대’란 표현이 나올 정도다. 약 2년 만에 신작 소설집 ‘그녀 이름은’(다산책방)을 낸 조 작가를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82년생 김지영’을 낸 뒤 작가로서 바뀐 점이 있는지 궁금했다. 그는 주저 없이 답했다.

“사실 그 전엔 제가 글쓰기를 좋아하니까 쓰는 거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 소설이 사람들에게 읽히고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주고, 또 그 사람들이 행동하면서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걸 실감했어요. ‘아, 글이 세상을 바꾸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조 작가는 ‘82년생 김지영’의 결말을 독자들이 만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고 덧붙였다.

그럼 미투 운동의 경과에 대해 어떻게 볼까. “이젠 여성들이 성폭력 피해에 대해 용기를 내 말할 수 있게 됐어요. 미투 운동이 광범위하게 일어나면서 우리 사회가 이제 그 이전으론 돌아갈 수 없어진 것 같아요. 여성주의 운동에서 보면 불가역적 지점이지요.”

신작에는 생리대 살 돈이 없는 중학생(‘공전 주기’), 사내 성폭력을 고발한 직장인(‘두 번째 사람’), 이혼을 결심한 여성(‘이혼일기’), 빚쟁이가 된 KTX 해고 여승무원(‘다시 빛날 우리’) 등 다양한 우리 시대 여성 28명의 얘기가 담겨 있다.

“‘82년생 김지영’이 가상의 인물을 세워 이 시대 평균적 여성의 삶을 소설로 만든 것이라면 ‘그녀 이름은’은 제가 인터뷰하거나 만난 다양한 여성의 이야기를 소설로 구성한 거예요. 팩션(faction·사실에 상상을 더한 이야기)이죠.”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그의 소설에 대해 작품성과 문학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있다.

“사실 ‘82년생 김지영’을 출판사에 보낼 때 그런 이유로 거절당하진 않을까 걱정했어요. 어쨌든 제 원고가 소설로 출간됐고 많은 분들이 찾아주셔서 자신감이 조금 생겼어요. 이젠 제 작품도 ‘문학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매우 조심스러운 말투라고 지적하자 조 작가는 “원래 제가 좀 소심해요”라며 계면쩍게 웃었다.

2011년 첫 책을 낸 뒤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그가 꾸준히 소설을 쓸 수 있었던 건 아홉 살짜리 딸 덕분이라고 했다. “딸에게는 제가 처음 만나는 여성 롤모델이잖아요. 제 일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글 쓰는 걸 포기하고 싶을 땐 딸을 생각했어요.”

‘82년생 김지영’으로 유명해진 뒤에도 그의 삶은 크게 바뀌진 않았다. “매일 아이를 학교에 보낸 뒤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써요. 달라진 거라면 지난겨울에 집 보일러 온도를 22도에서 23도로 1도 올렸다는 거? 아이랑 식당에 가면 1인분 안 시키고 2인분 시키는 거 정도가 달라진 것 같네요. 그동안 길거리에서 절 알아보는 사람은 딱 한 번 마주쳤어요. 너무 놀라서 ‘안녕하세요’ 황급히 인사하고 돌아왔죠(웃음).”

조 작가는 오는 11월쯤 불법체류자 등의 이야기를 담은 장편 ‘사하맨션’(가제)을 낼 예정이다. 내년엔 사교육 문제를 다룬 소설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도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모순과 병리를 다룰 것으로 보인다. 한동안 국내 문학에서 소홀했던 현실주의의 선두 대열에 있는 듯하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