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이 암시했던 ‘판문점 북미 실무회담’… 한국이 판 깔았다

입력 2018-05-28 08:10

북한과 미국의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회담이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열리고 있다. 주한대사를 지냈던 성 김 필리핀 주재 미국 대사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양측을 대표해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관측은 미 국무부와 백악관 실무진이 사전 준비를 위해 도착한 싱가포르에서 실무회담이 진행되리란 것이었다. 북미 양국은 이런 예상을 보기 좋게 깨뜨리며 ‘북한 땅’에서 마주앉았다.

◆ 文대통령 “북미 실무협상 곧 시작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27일 2차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발표하며 두 차례 ‘북미 실무협상’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미리 준비한 발표문에서 “(김 위원장에게) 북미 양측이 직접적인 소통을 통해 오해를 불식시키고 정상회담에서 합의해야할 의제에 대해 실무협상을 통해 충분한 사전 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이어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며 “지금 북미 간에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실무 협상이 곧 시작될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실무 협상 속에는 의제에 관한 협상도 포함된다. 이 의제에 관한 실무 협상이 얼마나 순탄하게 잘 마쳐지느냐에 따라서 6월 12일 북미정상회담이 차질 없이 열릴 것인가, 또 성공할 것인가가 달려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북미 실무회담이 곧 시작된다는 사실과 실무회담에서 북미정상회담 ‘의제’를 다루게 된다는 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 정도 발언이 공개적으로 나왔다는 것은 실무회담이 열리는 장소와 양측 참석자 수준에 대해서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문 대통령 이 협상 결과가 북미정상회담의 성사와 성공을 좌우할 거라고도 했다.


◆ 같은 장소에서 곧바로… 2차 남북정상회담→판문점 북미 실무회담

판문점 북미 실무회담은 2차 남북정상회담과 시간적 공간적으로 긴밀히 연결돼 있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깜작’ 회동한 다음날 같은 장소인 통일각에서 북한과 미국의 실무진이 마주앉았다. 2차 남북정상회담이 북미 실무회담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모양새가 됐다. 문 대통령과 한국정부가 사실상 북미 판문점 실무회담을 ‘주선’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해야 할 의제에 대해 실무협상을 통해 충분한 사전 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고, 김 위원장도 이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북한과 미국의 협상을 단순히 지켜보는 게 아니라 ‘협상을 해야 하고, 그것이 잘 돼야 하며, 어떤 부분을 합의해야 하는지’까지 깊숙이 개입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판문점 선언 이후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이상기류가 감지됐을 때 문 대통령은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북한과 미국 실무진이 싱가포르 등 제3국이 아닌 판문점에서 만났다는 것은 문 대통령과 한국 정부가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뜻이 된다. 더욱이 그에 앞서 같은 장소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진행해 협상의 물꼬를 트는 작업까지 했다. 북한과 미국이 진지하게 마주앉도록 한국 정부가 사실상 판을 깔아줬다고 볼 수 있다.


◆ 싱가포르 실무회담은 의전·경호 논의… 비핵화는 판문점에서

북한과 미국의 실무협상은 이원화됐다. 미국 국무부와 백악관 실무진은 싱가포르에 도착해 북한 측과 곧 협의를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선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의 형식에 초점을 맞출 듯하다. 사상 초유의 양국 정상회담을 어떤 ‘모양새’로 치를지 의전과 경호 문제를 다루는 자리로 보인다.

CNN은 “싱가포르 실무회담은 실행계획(logistics)을 위한 것이고, 본질(substance)은 판문점 실무회담에서 논의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문 대통령도 판문점 북미 실무회담이 ‘의제’에 관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에서 "미국 팀이 김정은 위원장과 나의 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해 북한에 도착했다"고 확인하며 회담 전망에 대한 긍정적 발언을 내놨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북한이 훌륭한 잠재력을 갖고 있고 언젠가 훌륭한 경제 및 금융 국가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김정은 위원장 역시 이 점에서 나의 의견에 동의한다. 그런 일은 일어날 것!"이라고 적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