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 “차기작 글쎄… ‘버닝’이 남긴 숙제부터” [인터뷰]

입력 2018-05-28 02:59
영화 ‘버닝’으로 돌아온 이창동 감독. 그는 “본의 아니게 ‘어벤져스3’ ‘데드풀2’ 같은 슈퍼히어로 영화들과 맞붙었다. 세상을 구원해줄 히어로, 관객이 원하는 서사는 그거였다는 뜻이다. 그러니 우리가 원하는 게 뭔지 질문하는 ‘버닝’ 같은 영화는 재미없게 느껴진 게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CGV아트하우스 제공

“영화감독은 작품으로 말해야지, 직접 나서서 이야기하는 건 좋은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홍보를 위해) 뭐라도 해야 된다는 생각에 하게 됐습니다(웃음).”

이창동(64) 감독은 언론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자신을 노출시키는 데 적잖은 부담을 느끼는 탓이란다. 하지만 8년 만에 신작을 내놓은 데다 그 작품으로 다섯 번째 칸영화제를 다녀온 그로서는 밀려드는 인터뷰 요청을 피하기 어려웠을 테다.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살가운 해명으로 입을 열었다.

‘버닝’은 올해 칸영화제의 강력한 황금종려상 후보로 꼽혔다. 공식 소식지 스크린데일리에서 역대 최고 평점(3.8점·4점 만점)을 받은 데 이어 국제비평가연맹상까지 거머쥐며 분위기는 한껏 고조됐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최종 수상이 불발됐다.

이 감독은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라고 솔직하게 답했다. 그는 “나도 심사를 해봐서 아는데, 매년 좋은 작품이 한두 개 떨어지게 돼 있더라. 그런 내막을 아는 나로서는 불안했다. 내게 그렇게 좋은 일이 생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개봉 전부터 칸 수상에만 초점이 맞춰졌던 터라 상을 못 받으면서 흥행 동력까지 잃을 것 같아 아쉽다”면서 “한국영화계 전체로 봐도 많이 아쉬운 일이다. ‘버닝’이 황금종려상을 받았더라면 활력을 얻는 좋은 계기가 되지 않았겠나”라고 덧붙였다.

배우 유아인, 스티븐 연, 전종서가 주연한 영화 ‘버닝’의 촬영 현장. CGV아트하우스 제공

국내 관객의 호불호가 갈린 데 대한 씁쓸함을 표하기도 했다. “모호함을 느끼게 하고자 했는데 관객들은 질문을 질문으로 받아들이지 않더군요. 각자 자신만의 서사대로 영화를 보고선 완벽하게 맞아떨어지지 않으니 부족하다고 느끼는 거예요.”

그렇다면 이 감독이 전하려던 ‘모호함’이란 무엇일까. “우리 세대 때는 세상에 답이 있었거든요. 사회 모순이 있어도 해결 가능하다고 믿었죠. 근데 지금은 그게 없어졌어요. 분명 뭔가 잘못됐는데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그것이 일종의 미스터리 아닐까요.”

차기작은 언제쯤 만나볼 수 있느냐는 질문에도 ‘모호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언제 하게 될지는 모르겠다”며 “당분간 영화를 (연출)하겠다는 의욕을 되살리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일단 ‘버닝’이 남긴 숙제를 제 나름대로 풀어야 한다”고 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