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증후군을 가진 발달장애인 정은혜(29·여)씨는 만화가 장차현실씨의 만화에 자주 등장했던 인물이다. 정씨는 만화가 장차현실씨의 딸이다.
그녀가 캐리커처 작가가 됐다. 발표하는 장차현실의 눈에서도 눈물이 나고, 참가자들의 상당수도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였다. 만화가 장차현실씨조차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장차현실씨는 24일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주최로 개최된 ‘장애예술과 사회적 포용’ 3차 모임에서 ‘천칠백개의 시선’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캐리커처 작가가 된 정은혜씨가 자신 앞에서 잘 그려달라고 웃어주는 사람들에 의해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맞이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만화가 장차현실씨는 “은혜의 감정에 충실한 삶을 살기로 결심한 뒤 모든 치료를 중단하고 하루를 살더라도 행복하게 살자고 결정했으나 복지관 직업학교 이후 많은 교육을 했음에도 갈 곳이 없었다”며 “집에서 ‘딩굴딩굴’하면서 낮에도 이를 가는 증상 등이 나타나 힘들 때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런 어느 날 엄마가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그림을 그리고 있는 딸을 보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혼자서 그림 그리고 있는 뒷모습을 볼 때는 답답함이 고개를 들었다.
그 때 양평 문호리 가난한 예술가마을에 ‘리버마켓’이 생겼고, 은혜씨는 ‘니얼굴’을 주제로 캐리커처를 그리는 작가로 들어가 2년전부터 발달장애인과 닮은 모습으로 ‘느리게, 작게, 천천히’ 상주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차현실씨는 “오전 7시30분에 마켓이 열리고, 오후 8시까지 월 4차례 사람들의 캐리커처를 그린 결과 2000명 정도의 그림이 완성됐다”며 “작품당 3만원 정도의 가격을 받아 모은 돈으로 현재 생애 첫 전시회를 열고 있다”고 귀띔했다.
장차현실씨는 “은혜 작가 앞에서 ‘저 예쁘게 그려주세요’라고 말한 수많은 사람들의 미소가 최고의 치유가 아니었나 생각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음악치료사 1호인 정혜원 중앙대 국악교육연구원 겸임교수는 ‘발달장애인의 웰니스와 예술’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중학교 2학년때 (정신과적인) 경기를 하던 남학생이 피아노를 배운 바 있다는 가족들의 말에 착안해 지속적으로 예술교육을 시킨 결과 난이도가 높은 연주도 초청 공연을 할 정도로 성장한 사례가 있다”며 “발달장애인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도 예술교육이 확산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정 교수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기에 발달장애인 잠재 예술가를 조기에 발굴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공감능력이 뛰어난 강사들이 발달장애인의 장점을 끌어낼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단법인 꿈꾸는마을 영종예술단에서는 ‘발달장애인 문화예술 평생교육 인프라가 필요하다’는 주제의 발표를 통해 “정부보조금이 끊긴 상황에서도 지속가능한 발달장애인 문화예술 활동을 위해서는 비장애인 문화예술단체와의 연대 및 모금 중심의 자생력을 갖춰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병은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지정기부금을 받을 수 있는 준비태세를 갖춰야 한다는 제언은 새로운 관점”이라며 “연구소 차원에서 발달장애인 문화예술에 대한 논의를 지속적으로 전개해 바람직한 방향을 만들어 보겠다”고 말했다.
방청석에 참여한 더 스페셜아트 블루윙스 곽은주 대표는 “경기도 안산에서 발달장애인 미술교육을 올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상황”이라며 “전국의 발달장애인 풀뿌리 단체들이 지속적으로 지역사회 안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정보공유 및 모금전문성 강화가 절실하다”고 요청했다.
주윤정 박사(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장애인예술전담부서를 신설한다고 발표했으나 부서명칭에 ‘문화’가 빠져서는 안된다”며 “새정부의 소수자 예술정책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기존 단체 위주보다는 전국의 풀뿌리 단체 네트워크를 통해 방향을 잡아가는 것이 절실하다”고 진단했다.
인천=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