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급한 北, 南 통해 북미회담 성사 총력전…文 “金, 남북회담 먼저 요청”

입력 2018-05-27 13:16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6일 ‘깜짝’ 남북정상회담은 김 위원장이 먼저 요청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재차 밝히는 한편, 미국과의 ‘빅딜’에서 우려하는 바도 구체적으로 피력했다.

◇남북회담 먼저 요청한 北, 회담 내용도 先공개

문 대통령은 27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김 위원장과의 2차 남북정상회담(4차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발표하면서 “김 위원장이 그제(25일) 오후 일체의 형식 없이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고 저는 흔쾌히 수락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어 “저는 지난 4월의 역사적인 판문점 회담 못지않게 친구 간의 평범한 일상처럼 이뤄진 이번 회담에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며 “남북은 이렇게 만나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 오후(현지시간)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취소하자 긴박하게 움직였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회담 취소 편지가 공개된 지 약 8시간 만에 발언 수위를 한껏 낮춘 담화를 발표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리비아식 해법(선 핵폐기, 후 보상)’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며 북미 간 갈등을 촉발시킨 당사자가 ‘결자해지’하는 모습을 보인 셈이다.

김 제1부상은 사실상 김 위원장의 메시지로 해석되는 담화문을 통해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시기 그 어느 대통령도 내리지 못한 용단을 내리고 수뇌상봉이라는 중대 사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데 대하여 의연 내심 높이 평가하였다”며 트럼프 대통령을 추켜세웠다. 김 제1부상은 또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돌연 일방적으로 회담 취소를 발표한 것은 우리로서는 뜻밖의 일이며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며 당혹감을 드러냈고, 최선희 부상이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을 ‘얼뜨기’로 비난한 것에 대해서도 “일방적인 핵폐기를 압박해온 미국 측의 지나친 언행이 불러온 반발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북한은 김 제1부상의 담화를 통해 미국에 직접 메시지를 보내면서 ‘서훈·김영철 라인’을 통해 남측에 정상회담 의사를 타진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27일 “남북이 그제 최근의 북미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과정, 남북관계 발전과 관련해 4·27 후속조치 협의를 하는 과정에서 북측에서 김 위원장의 구상이라고 하면서 격의없는 소통을 갖자는 방안을 제시해왔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두 사람 접촉 이후 관련 장관들과의 협의 등을 통해 문 대통령에게 건의했고, 문 대통령이 승낙해 그제 밤부터 어제 오전까지 실무 준비를 마치고 어제 오후 정상회담이 개최됐다”고 설명했다.

북한의 적극적인 태도는 회담 내용 발표에서도 드러났다. 북한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은 27일 오전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신속히 보도했다. 문 대통령의 오전 10시 회담 결과 발표보다 훨씬 앞선 시점이었다. 통신은 “회담에서는 판문점 선언을 신속히 이행해나가며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고 지역의 평화와 안정, 번영을 이룩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들과 현재 북과 남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 조미수뇌회담(북미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심도있는 의견 교환이 진행됐다”고 전했다.

청와대는 회담 당일에 개최 장소와 시간만 공개했을 뿐 내용에 대해서는 함구했었다. 문 대통령은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며 “북측은 북측 형편 때문에 오늘 논의된 내용을 보도할 수 있다고 하면서 우리도 오늘 발표해줬으면 좋겠다는 요청을 했다”고 말했다.



◇다시 본 궤도에 오른 북미회담, 주도권 싸움 치열할듯

북한의 이런 움직임은 북미회담 재추진을 위한 동력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의 ‘일격’에 뺏긴 주도권을 회복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남북관계를 발판삼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위해서는 미국 측이 북미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김 위원장의 메시지에 즉각 반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7일 베네수엘라에서 구금됐다 석방된 미국인을 백악관에서 환영하는 자리에서 “6월 12일 북미정상회담이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것은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완전한 비핵화 의사가 있음을 재확인한 것과 거의 동시에 회담 재추진 의사를 밝힌 것이다.

북미 양측은 이번주 싱가포르에서 본격적인 실무접촉을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미국 측 사전준비팀이 백악관과 미 국무부 직원 등 약 30명으로 구성됐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27일 출발해 28일 일본을 거쳐 싱가포르로 갈 예정이다. 이르면 28일, 늦어도 29일에는 북미 양측 간 첫 실무회의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양측이 회담 재개를 공식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의 구체적 방안에 대해서는 입장 차가 있다. 실무협상에서 비핵화 의제에 대한 입장 차를 좁히기 위한 치열한 탐색전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북미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열릴 것인지 여부는 의제에 관한 실무협상이 얼마나 순탄하게 잘 마쳐지느냐에 달려있다”며 “저는 북미 양국이 상대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분명히 인식하는 가운데 회담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에 실무협상도 6·12 본 회담도 잘 되리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 역할 중요성 커져

위기에 몰렸던 북미회담이 극적으로 회생하면서 문 대통령의 중재자로서의 역할도 커지고 있다. 쉽지 않은 비핵화 협상이 합의를 도출하기까지는 험난한 고비를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결과 발표를 통해 북미정상회담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 그러면서 회담 중단에 이르게 된 북미가 서로 오해를 풀고, 회담을 신속히 재개할 것을 촉구했다.

문 대통령은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을 통해 김 위원장이 협상에서 가장 우려하는 부분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불분명한 것은 비핵화의 의지가 아니라 자신들이 비핵화를 할 경우에 미국에서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체제안전을 보장하겠다고 하는 것에 대해 확실히 신뢰할 수 있는가에 대한 걱정”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미국에 대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이 비핵화할 경우 적대관계를 확실히 종식시킬뿐 아니라 경제적 번영까지 도울 뜻이 있다는 의사를 분명히 피력했다”며 “저는 양국 간의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이런 의지들을 서로 전달하고 직접 소통을 통해 상대 의지를 확인할 것을 지금 촉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