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한 뒤에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건설적인 대화와 행동을 보일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회담 재개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심지어 “기존 회담이 예정대로 열릴 수도 있고, 다른 날에 열릴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금융규제완화 법안 서명식에서 “정상회담 취소는 북한과 세계에 중대한 차질”이라면서 “북한의 미래와 관련해 긍정적인 일들이 일어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북·미가 다시 정상회담의 불씨를 이어갈지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을 취소한 가장 큰 이유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의구심이라는 게 백악관의 설명이다.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과 전화브리핑을 갖고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백악관 안보 부보좌관을 싱가포르에 파견했는데, 북한은 약속장소에 나오지 않았고 심지어 전화도 안 받았다”고 말했다. 백악관은 그런 북한의 행동이 상식 이하라며 북한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북한의 태도 변화에 중국 배후론을 거론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이 두 차례 방중을 통해 중국의 지원을 약속받으면서 굳이 미국의 체제 안전 보장과 경제 지원을 아쉬워하지 않는다면 북미정상회담을 하더라도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판단을 한 것이다. 북한이 느닷없이 한미군사훈련을 걸고넘어지면서 미국을 비난하는 성명을 잇따라 내놓은 것이 중국의 영향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조셉 윤 전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도 중국 개입설을 지지하고 있다. 그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김 위원장에게 정상회담 속도를 늦추라고 말했을 것”이라고 뉴욕타임즈(NYT)에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비난하는 성명을 낸 직후만 해도 북한을 달래는 제스처를 취했다. 하지만 북한이 최선희 외무성 부상을 내세워 마이크 펜스 부통령까지 공격하자 북한이 협상 의지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북미가 이런 신경전을 벌이기 이전에 이미 회담이 제 때 열리기 어려운 상태였다고 NYT는 보도했다. 정상회담이 3주도 안 남은 상태에서 합의문 초안조차 만들어지지 않을 만큼 비핵화 협상이 더뎠다는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 이행시기가 핵심 쟁점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도 오락가락했다. 그는 지난 22일 한미정상회담에서는 “북한의 비핵화가 한꺼번에 이행돼야 한다”고 말했으나, 그 다음날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는 “단계적인 이행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북한과 미국의 오랜 불신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은 “북한에게 ‘잘사는 것’은 부차적인 고려사항이며 체제 안전이 최우선”이라면서 “그들은 미국이 자신들을 무너뜨릴 능력이 있고, 그럴 의도도 있다고 믿고 있다”고 NYT에 말했다.
부시 행정부 시절 국가안보회의 아시아담당국장을 지낸 마이클 그린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부소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를 보면 과거 북한의 협상에 대한 공부가 부족한 것이 명백하다”며 “북한이 회담에 나선 것은 제재완화와 핵보유국 지위 인정을 노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