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 오후(현지시간) 북·미 정상회담을 돌연 취소하자 외신들은 ‘트럼프답다’는 평을 내놨다. 협상에서 유리한 조건을 얻어내지 못할 것처럼 보이자 아예 판을 뒤엎어버렸다는 해석이다. 다만 양국 모두 대화 여지를 남겨놓은 만큼 협상이 계속될 수 있다는 전망이 많았다.
많은 매체는 북·미 정상회담 취소가 트럼프 특유의 협상전략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포린폴러시(FP)는 트럼프가 회담 취소를 ‘블러핑’으로 활용해 김 위원장이 회담 성사에 매달리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봤다. 더힐 역시 “이번 조치는 협상전술일 수 있다”고 평했다. 익명의 트럼프 측근은 폴리티코에 “(북한의) 푸대접을 참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987년 저서 ‘거래의 기술’에서 “협상테이블을 박차고 나갈 줄 알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과거 버락 오바마 정권이 이란 핵협상에서 만족스런 성과를 얻지 못한 것도 협상 타결에 목을 맸기 때문이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미 공화당 중진인 짐 인호페 상원의원은 “(회담 취소는) 트럼프의 거친 대화전략”이라고 평가하면서 “북한은 고립돼 있는 한 협상테이블에 돌아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폴리티코는 “트럼프에게 속지 말라. 트럼프는 정상회담을 절실히 원하기에 때와 장소만 맞는다면 협상에 뛰어들 것”이라고 봤다. FP는 트럼프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다시 평양에 보내 대화를 진행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트럼프의 벼랑 끝 전략이 성과를 거둘지에 부정적이었다. 주간 애틀랜틱은 김 위원장에게 보낸 트럼프의 공개서한을 “매우 트럼프스러운(Trumpian) 편지”라고 평하면서도 “국제 외교무대는 (트럼프가 성공을 거뒀던) 부동산 거래시장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블룸버그는 “여전히 북·미 정상회담은 추진할 만한 가치가 있지만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으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가장 득을 본 것으로 평가받은 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다. 회담 취소로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여지가 커졌기 때문이다. ‘차이나 판타지’의 저자 제임스 만은 뉴욕타임스에 “회담을 연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최대한 기다리도록 하는 게 시 주석에게 이익”이라면서 “특히 무역에서 (회담 취소는) 중국에 대미(對美) 지렛대를 쥐여줬다”고 말했다. 블룸버그도 “미국을 믿을 수 없다는 북한의 입장에 한국 정부가 동조하면서 중국과 입장을 같이 할 수 있다”고 평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내심 웃고 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조지 W 부시 정부에서 일한 션 킹 파크전략연구소 대표는 FP에 “아베 총리와 볼턴이 오늘의 승자”라고 말했다. 대북정책에서 강경책을 주문했던 볼턴 보좌관은 이번 조치로 자신의 영향력을 확인했으며 아베 총리 역시 북·미 대화 과정에서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기에 회담 취소가 이득이란 평가다.
반면 회담을 주선한 한국으로서는 맥 빠지는 결과라는 평이 많다. FP는 “문재인 대통령은 북·미 두 정상을 만나게 하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을 기울였다”면서 “이번 주 워싱턴을 방문했지만 트럼프가 문 대통령과 회담 취소 논의를 한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고 평했다. 이안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대표는 “트럼프 또는 누군가가 회담 취소 발표 전에 한국에 언질을 줬어야 했다”고 말했다.
조효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