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북미정상회담 취소를 발표했다. 북한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8시간여 만에 담화를 내고 “아무 때고 마주앉을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을 치켜세우기도 했고, 최근은 대미 공격을 해명하기도 했다. 북미정상회담은 이대로 깨질 수도, 극적으로 열릴 수도 있는 안개 속을 지나는 중이다.
이런 상황은 6·13 지방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북한의 평화 제스처를 ‘위장평화쇼’라고 주장해온 자유한국당에 과연 호재로 작용할까. 북미정상회담(6월 12일)이 마침 선거 전날로 잡혀 더불어민주당이 매우 유리한 상황이라던 당초의 전망은 여전히 유효한 것일까.
뚜렷한 이슈도, 눈길 끄는 인물도, 명확한 구도도 없었던 이번 선거는 문재인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와 흡사한 성격을 갖고 있었다. 한국당을 비롯한 야권은 그 평가의 잣대를 민생과 경제로 설정하려 했지만,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라는 거대한 안보이슈에 파묻힌 터였다. 사실상 문재인정부의 안보 역량과 평화 노선에 국민이 점수를 매기는 선거로 굳어져 가던 상황이 북한과 미국 사이의 돌발 상황이란 변수를 만났다.
◆ “보수층 결집할 듯… 與지지층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김동영 한국사회여론연구소 기획실장은 급변하고 있는 북미정상회담 전망이 일정 부분 선거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보수층의 결집을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김 실장은 “위장평화쇼였다는 한국당 주장에 보수층의 동조가 이어질 수 있다. ‘그것 봐라 북한을 믿으면 안 되는 거였다’는 식의 여론이 형성될 수 있어서 한국당과 보수 쪽에 약간 힘이 실릴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야당에 호재가 되는 측면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북한이 북미정상회담의 판을 완전히 깨고 싶어 하지는 않는 것 같다면서 다시 정상회담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에 주목했다. 김 실장은 “여권 입장에서는 문 대통령이 미국에 다녀온 직후 깜짝 발표가 나와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문 대통령 잘못이라고만 보기도 어렵고, 판이 완전히 깨진 것도 아니어서 당분간 관망세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역시 현 북미 국면이 지방선거에 부분적인 영향을 줄 거라고 봤다. 하지만 지역별로, 연령별로, 성향별로 그 영향의 크기는 다를 수 있다고 했다. 배 본부장은 “이번 정상회담은 안보 이슈로 치르는 것이고, 안보 이슈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역은 영남이다. 문 대통령이 판문점 선언을 하면서 보수 성향 유권자도 상당히 공감했었는데, 상황이 틀어지면 대구·경북, 특히 민주당과 한국당이 팽팽한 접전 펼치고 있는 부산·울산·경남에 결코 작지 않은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미정상회담이 무산으로 굳어질 경우 부·울·경 지역의 여야 지지율에 미칠 영향은 10% 안팎”이라고 전망했다. 연령별로는 50대의 표심이 흔들릴 수 있다고 했다. 김 실장은 “코너에 몰린 PK 지역의 한국당 후보들에게는 하나의 반전 계기가 될 수 있다. 수도권에서는 접경지역 민심 정도가 영향을 받을 수 있겠지만, 수도권 전반의 판세가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현 상황이 전국적으로 선거판을 뒤엎는 판도라 상자가 될 거라고 보기는 힘들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에도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그는 “위기 순간에는 지지층이 결집하기 마련이다. 결과적으로 민주당 지지층 역시 대거 결집하는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럴 경우 바른미래당이나 민주평화당 등의 존재감이 희박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 “전국 선거판도 뒤바뀔 가능성, 크지 않다”
권순정 리얼미터 조사분석실장은 “북미 갈등에 선거판이 영향을 받긴 할 것”이라며 “수도권 충청권, 경남권(울산 제외)에서 여야 지지율 격차가 20%포인트까지 벌어져 있었다. 그런 격차가 조금 좁혀지는 변화는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것이 판도를 바꿀 변화가 될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야당 입장에서도 대대적인 공세에 나서기가 부담스러운 이슈라는 게 이유였다.
권 실장은 “야당이 만약 위장평화쇼란 식으로 대국민 메시지를 설정하면 역풍이 있을 수 있다. 북미 회담이 우리 정부만 추진한 것은 아니잖나. 우리가 중재 역할을 했다가 무산된 건데 그 책임 자체가 정부여당보다는 북미 양측에 있다 보니 야당에서 정부여당 책임론만 제기할 경우 공감을 많이 얻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남북정상회담 이후에 북미 회담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국민적 분위기가 상당히 컸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이 대통령 지지도에도 나타난 거였기 때문에 야당도 무턱대고 정부여당 책임론으로 공격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안보 이슈에 묻혀 주목받지 못했던 민생 문제, 경제 문제 등이 표면화될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