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취소 발표에 대한 담화를 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위임에 따라’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명의로 신속히 발표됐다. 공격적인 표현으로 상대방을 압박했던 그동안의 발언과 달리 유화적 표현과 서술 방식이 담화문 곳곳에 담겨 있었다. 앞서 공격적 담화를 발표했던 배경을 설명하거나 감춰왔던 속내를 드러낸 듯한 문장도 있었다.
이례적 표현 1 “미국의 압박에 대한 반발에 지나지 않았다”
김 제1부상은 담화에서 “나는 조미 수뇌상봉(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표명이 조선반도(한반도)는 물론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바라는 인류의 염원에 부합되지 않는 결정이라고 단정하고 싶다”고 평가한 다음 문장에 앞서 북한 외무성에서 발표한 담화의 배경을 설명하는 문장을 전개했다. 설명은 ‘해명’에 가까웠다.
“트럼프 대통령이 거론한 ‘커다란 분노와 노골적 적대감’이라는 것은 사실 조미 수뇌상봉을 앞두고 일방적인 핵페기를 압박해온 미국 측의 지나친 언행이 불러온 반발에 지나지 않는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공격적인 언사로 비난한 자신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담화를 ‘반발에 지나지 않는다’는 수준으로 격하했다. 반발 차원의 담화에 트럼프 대통령이 과한 결정을 내렸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이례적 표현 2. “트럼프 대통령의 노력을 내심 높이 평가했다”
김 제1부상은 이어 트럼프 대통령을 치켜세웠다.
“역사적인 조미 수뇌상봉에 대해 말한다면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시기 그 어느 대통령도 내리지 못한 용단을 내리고 수뇌상봉이라는 중대사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데 대하여 의연 내심 높이 평가하여왔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를 포함해 지난 정권에서 단 한 번도 성사시키지 못한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해온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를 ‘용단’이라고 평가했고, “의연 내심 높이 평가했다”며 띄우기까지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전 대통령과 비교해 우위에 서려는 욕구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을 ‘높이 평가’한다는 대목은 북한이 이런 심리를 직접 겨냥한 것으로 읽힌다.
이례적 표현 3. “현명한 방안이 되길 은근히 기대하기도 했다”
김 제1부상은 “돌연 일방적으로 회담취소를 발표한 것은 우리로서 뜻밖의 일이며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유감을 표한 뒤 북·미 정상회담 추진 과정에서 북한이 갖고 있던 속내를 살짝 꺼내 보이기도 했다.
“‘트럼프 방식’이라고 하는 것이 쌍방의 우려를 다같이 해소하고 우리의 요구 조건에도 부합되며 문제 해결의 실질적 작용을 하는 현명한 방안이 되기를 은근히 기대하기도 했다.”
북·미 정상회담 전후의 상황과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로 인해 상호 ‘윈·윈(win·win)'하기를 기대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김 제1부상은 “우리 국무위원회 위원장(김정은 위원장)께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면 좋은 시작을 뗄 수 있을것이라고 하시면서 그를 위한 준비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오셨다”고 덧붙였다.
이례적 표현 4. “지금보다 좋아지면 좋아졌지 더 나빠지겠는가”
김 제1부상은 담화의 마지막 부분에 북·미 정상회담 재개 의지를 드러냈다. ‘회담 취소’까지 언급했던 지금까지의 담화와 다르게 미국을 회유하고 설득해 회담 준비를 다시 시작할 의사를 노골적으로 풀어냈다.
“만나서 첫술에 배가 부를리 는 없겠지만 한가지씩이라도 단계별로 해결해 나간다면 지금보다 관계가 좋아지면 좋아졌지 더 나빠지기야 하겠는가 하는 것쯤은 미국도 깊이 숙고해보아야 할 것이다.”
김 제 1부상은 “우리는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음을 미국 측에 다시금 밝힌다”며 담화를 끝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