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비공’ 트럼프에 놀란 ‘원조 럭비공’… 회담 살리기 나선 北

입력 2018-05-25 09:09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하자 북한은 “인류 염원에 부합되지 않는 결정”이라 비판하면서도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시기 그 어느 대통령도 내리지 못한 용단을 내리고 수뇌상봉이라는 중대 사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데 대해 의연 내심 높이 평가해왔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미국의 과거 대통령들과 비교해 추켜세운 것이다.

북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은 25일 ‘위임에 따라’ 발표한 담화에서 이같이 말하며 “돌연 일방적으로 회담 취소를 발표한 것은 우리로서는 뜻밖의 일이며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위임에 따라’라는 문구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직접적인 뜻이 담겼음을 의미한다.

담화는 비판의 형식이었지만 북·미 정상회담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미국과 만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그동안 물밑 협상에 임했던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김 제1부상은 “벌어진 불미스러운 사태는 역사적 뿌리가 깊은 조·미(북·미) 적대관계의 현 실태가 얼마나 엄중하며 관계개선을 위한 수뇌상봉이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트럼프 방식’이라고 제시된 비핵화 방안에 ‘은근히 기대했다’고도 밝혔다. 김 제1부상은 “트럼프 방식이라고 하는 것이 쌍방의 우려를 다 같이 해소하고 우리의 요구 조건에도 부합되며 문제해결의 실질적 작용을 하는 현명한 방안이 되기를 은근히 기대하기도 했다”며 이례적으로 북·미 정상회담을 준비하며 가졌던 내심을 드러냈다.

이어 김 위원장 역시 이를 강조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 국무위원회 위원장께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면 좋은 시작을 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그를 위한 준비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 오시였다”고 했다.

북한은 북·미 정상회담의 개최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김 제1부상은 “조선반도와 인류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모든 것을 다하려는 우리의 목표와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며 “우리는 항상 대범하고 열린 마음으로 미국 측에 시간과 기회를 줄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의 재고를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이어 “만나서 첫술에 배가 부를 리는 없겠지만 한가지씩이라도 단계별로 해결해 나간다면 지금보다 관계가 좋아지면 좋아졌지 더 나빠지기야 하겠는가 하는 것쯤은 미국도 깊이 숙고해 보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음을 미국 측에 다시금 밝힌다”고 강조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하겠다는 의사를 북측에 공개서한으로 전달했다. 그는 “(북한의 발언과 성명들은) 엄청난 분노와 공개적 적대행위”라며 “애석하게도 지금 시점에서 회담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김 위원장이 마음이 바뀌면 주저 말고 전화나 편지를 해달라”고 덧붙이며 여지를 남겼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