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위헌 시비에 관한 판결이 시작됐다. 6년여만에 공개 변론을 진행하는 헌법재판소 변론에서는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며 낙태죄를 위헌으로 봐야 한다는 청구인 측 추장과 태아 생명권을 보호해야 한다며 합헌을 주장하는 이해관계인 측 주장이 재판소 안팎에서 충돌했다.
헌법재판소는 24일 오후 2시부터 서울 재동에 있는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형법 제269조 제1항(자기낙태죄) 등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공개변론을 진행했다.
◆ “‘낙태죄’ 형사처벌은 자기결정권 침해…태아 생명 보호에도 적절치 않아”
헌법재판소가 위헌 여부 변론을 진행하는 ‘낙태죄’는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규정이다. ‘낙태죄’는 헌법재판소가 주로 다룬 형법 제269조 제1항 외에도 형법 제270조 1항에도 규정돼 있다. 이에 따르면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돼 있다. 낙태 여성과 집도 의사를 처벌하도록 돼 있는 것이다.
사건을 청구한 청구인 정모씨는 산부인과 의사로 낙태를 시술한 혐의로 기소된 뒤 위헌법률심판 제청이 거부되자 지난해 2월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청구인 측에서는 “자기낙태죄(헌법 제269조 제1항) 조항은 여성이 임신·출산을 할 것인지 여부와 그 시기 등을 결정할 자유를 제한하고 ‘자기운명결정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청구인이 주장하는 자기운명결정권은 국가권력으로부터 간섭 없이 일정한 사적 사항에 관하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의적 권리를 의미한다.
청구인 측은 이어 “낙태 처벌은 임신의 유지와 출산을 강제해 임산부의 생물학적·정신적 건강을 훼손하고 신체 완전성에 관한 권리와 모성을 보호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며 “임신 초기에 안전한 임신중절 수술을 받지 못하게 하여 임부의 건강권을 침해한다”고도 했다. 낙태를 ‘죄’로서 처벌하는 것은 임신중단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못해 태아의 생명이나 임산부의 생명을 보호하는 데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낙태 시술을 한 의사를 처벌하는 동의낙태죄 조항에 대해서도 청구인 측은 “낙태가 죄로써 처벌돼 일반인에 의한 낙태가 이뤄지는데 일반인에 의한 낙태는 의사에 의한 낙태보다 더 위험하다”면서 “불법성이 큼에도 의사에 의한 낙태를 가중처벌하는 것은 평등원칙에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 “태아의 생명권 보호 정도는 사회적 합의 필요…현재도 불가피한 경우에는 시술 가능”
합헌을 주장하는 법무부 측 이해관계인은 “태아는 어머니와 별개의 생명체이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인격체로 성장할 가능성이 커 태아에게도 생명권의 주체성이 부여된다”면서 “태아의 생명권 보호 정도는 그 성장단계나 어머니의 몸 밖으로 나왔는지(출산했는지)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태아의 생명보호는 매우 중요한 공익으로 낙태의 급격한 증가를 막기 위해서는 형사처벌이 불가피하고 현재에도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모자보건법에 따라 예외적 낙태 시술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낙태의 범위를 어느 범위에서 정할 것인지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며 사회적·경제적 사유로 낙태를 허용할 경우 대부분의 낙태를 허용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동의낙태죄 조항에 대해서 이해관계인 측은 “태아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자가 낙태 시술을 하는 경우 비난가능성이 일반인보다 훨씬 크다”고 주장했다.
◆ 헌재, 2012년에는 ‘합헌’ 선고…재판소 밖에서도 논쟁 뜨거워
‘낙태죄’ 위헌 시비에 관한 공개변론은 2011년 11월10일에도 진행됐다. 2012년 8월23일 선고에서 헌법재판소는 “살피건대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고, 태아가 비록 그 생명의 유지를 위하여 모에 의존해야 하지만 그 자체로 모와는 별개의 생명이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므로 태아에게도 생명권이 인정되어야 한다”면서 “사익인 임부의 자기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에 비하여 결코 중하다고 볼 수 없으므로 자기낙태죄 조항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며 ‘낙태죄’의 합헌을 선고했다.
2012년 선고 당시와 달리 현재는 헌법재판소 구성이 달라져 위헌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현재 헌법재판소장인 이진성 소장 등 재판관 6명은 인사청문회 등에서 현행 낙태죄 처벌에 대해 수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비친 바 있다. 헌법재판소는 공개변론에서 제시된 양측의 의견을 토대로 별도 선고기일을 잡아 위헌 여부를 판단할 예정이다.
공개변론이 진행된 이날 재판소 밖에서도 논쟁이 뜨거웠다. 각계 여성·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등 단체들은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헌법재판소에 “역사적 흐름에 퇴행하지 않는 위헌 판결을 내리라”고 주장했다. 프로라이프의사회 등 8개 단체로 구성된 ‘낙태법 유지를 바라는 시민연대’는 “태아는 어머니와는 다른 별개의 존재이고 낙태는 태중의 무고한 생명을 죽이는 일”이라며 낙태죄 존치와 합헌 판결을 요구했다.
김종형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