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한 후보들의 이색공약이 잇따르고 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바로 화장실 관련 공약이다. 고은영 녹색당 제주도지사 후보와 홍성규 민중당 경기도지사 후보는 성별 또는 장애 여부와 관계없이 사용할 수 있는 ‘성중립화장실(All gender restroom)’ 설치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성중립화장실이란 일반적으로 성별 또는 장애 유무와 구별 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1인용 화장실 개념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 국외에서는 성 소수자의 ‘볼일 볼 권리’를 보장하자는 차원에서 제시된 개념이지만, 국내에서는 성 소수자에게 한정하지 않으며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독립된 공간에 세면대와 용변기, 장애인용 손잡이 등이 설치된 형태로 한국의 공공시설에 주로 설치된 장애인 화장실과 흡사하다. 화장실 이용 시 동행자가 필요한 장애인, 노약자, 아이를 동반한 가족 등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형태다. 현재 정치권과 대학가 등을 중심으로 진지하게 논의나 검토가 이뤄지고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성중립화장실 도입에 대한 상당한 논의를 거쳐 확산 단계에 들어선 곳이 많다. 그러나 그 주된 이용 양태가 ‘남녀공용 화장실’과 유사한 측면이 있어 반발이 만만찮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경우에 따라 범죄 의도를 가진 사람들의 범죄 실행 욕구를 증폭할 수 있다는 등 우리나라에서는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 해외에서 비교적 보편화된 개념
성중립 화장실은 해외에서 비교적 보편화된 개념이다. 2015년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 성중립화장실을 설치했다. 2016년에는 뉴욕시의회가 시내 모든 공중화장실에 성 구분을 없애는 조례안을 통과시켰는데 이는 1인용 화장실 남녀 구분을 없애고 성중립 간판을 의무화하는 내용이었다. 이어 2017년 뉴욕시 교육청은 시내 모든 공립학교 1인용 성중립화장실을 올해까지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산하 서머빌 칼리지 학생들은 역시 지난 1월 투표를 통해 화장실 남녀 구분을 없애기로 했으며 스웨덴, 캐나다 등에서도 성중립화장실이 증가하는 추세다. 이웃 나라 중국 베이징의 대표 유흥가인 산리툰·난뤄구샹 등에도 성중립화장실이 설치됐으며 일본은 2020년 도쿄올림픽에 대비해 성중립화장실을 설치할 방침이다.
◆ 국내, ‘몰카’ 문제로 거부감 느껴 vs 단순한 ‘성별문제’ 아냐…
하지만 국내에서는 성중립화장실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특히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화장실 남녀 분리 요구가 더 강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역행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또한 최근 ‘몰래카메라 범죄’가 뜨거운 화두로 오른 가운데 이를 우려하는 시민들도 상당수다.
한 네티즌은 “여자 화장실 불법 촬영으로 검거되는 사람은 해마다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공용 화장실을 만든다는 건 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취지는 좋은데 이것도 나라마다 상황을 봐가면서 도입해야지 우리나라는 아직 멀었다”고 주장했다. 또 “우리는 구분된 화장실을 오랫동안 사용해 왔다. 이제는 이런 관행이 이미 사회와 문화의 일부가 되었다. 바꾸기 힘들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성중립화장실이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견해가 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지하철에서 몰카 범죄가 자주 일어나는 이유는 피해자가 스스로 방어하기 어려운 상황이 범죄 의도를 자극하기 때문”이라며 “똑같이 몰카를 설치한다고 해도 여성만 있는 공간에 몰카를 가지고 들어가는 것에 비해 발각 위험이 적다고 판단할 개연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윤해성 박사 역시 “화장실 구조만을 가지고 성범죄가 일어난다고 보긴 어렵지만, 남녀가 모두 이용할 수 있는 경우 좀 더 쉽게 범죄에 다가설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찬성하는 한 네티즌은 성중립화장실이 단순히 성별 문제에 국한돼 있는 것이 아님을 환기했다. 그는 “장애를 앓고 있는 어머니 때문에 찬성한다. 내가 잠깐 나가더라도 아버지가 어머니를 여자 화장실에 데리고 가야 할지 남자 화장실로 데리고 가야 할지 난감해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성중립화장실은 독립된 잠금장치가 있고 세면대와 양변기 모두 한 칸에 놓여있다. 화장실 안에서 이성과 조우하게 될 우려는 없다”며 “이는 단순한 성별 문제가 아니라 장애인 등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위한 문제다”라고 주장했다.
신혜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