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 다했던 김정은·폼페이오… “검증범위-반대급부 서로 제시”

입력 2018-05-24 14:19

3월 31일과 5월 9일 두 차례 방북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김 위원장과 나눴던 대화 내용을 일부 소개했다. 두 사람은 비핵화의 가장 민감한 부분까지 회담 테이블에 올려놓고 의견을 교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폼페이오 장관은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 수준과 검증방법을 말했고, 김 위원장은 북한이 기대하는 반대급부를 제시했다.

◆ 폼페이오 ‘비핵화 검증’ 말하자 김정은 ‘반대급부’ 제시

폼페이오 장관은 23일(현지시간)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방북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김 위원장과 나는 공동의 목표에 대해 논의했다. 김 위원장은 북한 주민의 복지와 경제성장을 위해선 전략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솔직하게 나와 공유했다"고 말했다.

또 "진정한 비핵화를 위한 검증 작업 등을 포함해 북한이 취해야 할 조치에 대한 미국의 견해를 분명히 전했다"며 "김 위원장 역시 (비핵화) 목표를 달성하면 민간 부문 사업에 대한 지식과 노하우 등의 형태로 미국이 경제적인 도움을 제공할 것임을 분명히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북한이 원하는 것은 미국의 경제적 지원"이라며 “김 위원장은 미국의 경제적 지원과 함께 비핵화 이후의 체제 보장을 원한다"고 설명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김 위원장에 대해 "(과거 북한 지도자들과는) 다른 세대의 사람"이라며 "트럼프 대통령과 만날 때 그가 기꺼이 전략적 변화를 추진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폼페이오 장관은 다음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세계를 위한 위대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고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외교 및 경제 제재 캠페인이 다음달 12일 열리는 역사적인 회담에서 열매를 맺을 것"이라며 "한반도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위한 확실한 조치를 취할 때까지 (북한을 향한)우리의 자세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김정은-폼페이오 ‘北 핵시설 리스트’ 상호 교환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3월 말 북한을 처음 방문했을 때 북한 내 주요 핵시설 위치가 담긴 리스트를 북측과 상호 교환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중앙정보국(CIA) 국장이자 국무장관 지명자였던 폼페이오 장관은 미국이 자체 파악한 북한 핵시설 자료를 제시했고, 이에 북측도 내부 자료를 공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그동안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드러난 것보다 훨씬 더 속도감 있게 진행돼 왔다는 점을 의미한다.

외교 소식통은 “폼페이오 장관이 처음 북한에 갔을 때 미 정보 당국이 파악한 북한의 핵심 핵시설 위치를 북한에 제시한 것으로 안다”며 “북한도 관련 자료를 공개하면서 이를 크로스체크하는 과정을 거친 것”이라고 말했다.

핵시설 공개는 비핵화 검증의 첫 단계다. 통상 핵 폐기 시 핵시설, 핵물질, 핵탄두 및 미사일 정보를 제출하는 ‘신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같은 공신력 있는 사찰단이 이를 확인하는 ‘사찰’, 실제 폐기 이행 여부를 감시하는 ‘검증’ 절차를 밟게 된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측에 핵시설뿐 아니라 핵물질, 핵무기도 모두 포함하는 ‘원샷 사찰’을 요구했을 가능성이 높다.

북·미가 일찌감치 핵시설 자료를 교환했다는 건 양측이 협상 상대로서 상당한 신뢰 관계를 형성했다는 의미다. 이때 미국은 북·미 정상회담 성사 조건으로 내세웠던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북·미 양국은 폼페이오 방북 이후 정상회담을 공식화했다.

북한은 이후 비핵화 의지를 입증할 조치를 연달아 취했다. 노동당 제7기 3차 전원회의(4월 20일)에서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지와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발표했고, 4·27 판문점 선언에 ‘완전한 비핵화’를 명시했다. 지난 9일 폼페이오 장관의 2차 방북 직후엔 억류 미국인 3명을 석방했다.

이렇듯 비핵화 협상이 속도감 있게 진행된 반면 이에 상응하는 체제 안전보장 논의는 더딘 상황이 북한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입장에서는 비핵화와 체제 보장을 맞바꾸는 ‘빅딜’에서 비핵화 쪽으로만 무게가 쏠리는 상황을 경계한 것이다.

북·미는 최근 북한이 중대한 선제 조치를 취하면 미국이 테러지원국 해제 등 보상을 제공하는 데까지 타협점을 찾은 것으로 전해졌다. ‘비핵화 전 보상은 없다’는 미국과 ‘단계적·동시적 조치’를 요구한 북한 입장을 절충한 것이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은 이런 상황에서도 볼턴이 ‘선 비핵화, 후 보상’의 리비아식 해법을 계속 언급하자 그에 대한 노골적 적대감을 드러냈던 것”이라고 말했다.


◆ 트럼프 “북미정상회담, 좋은 기회 여전히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여전히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발언을 24일 방송되는 시사프로그램 '폭스&프렌즈'가 트럼프 대통령 인터뷰 내용을 간략하게 미리 공개하면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고 보장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낙관적인 견해를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 우리는 그것을 보고 있고, 우리는 그것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에게 얘기하고 있다. 우리는 특정한 조건들(certain conditions)을 갖고 있다.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좋은 기회가 있다. 북한에 훌륭한 일이 될 것이다. 만약 그것(북미정상회담)이 일어나면, 북한을 위해 훌륭한 일이 될 것"이라면서 "세계를 위해서 훌륭한 일이 될 것이며 그래서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