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계에서 아들이 아버지를 따라 선수의 길로 들어서는 것은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이탈리아의 체사레 말디니와 그의 아들 파울로 말디니가 있다. 이 부자(父子)는 이탈리아 최고의 수비수로 명성을 떨쳤으며 한때 대표팀에서는 감독과 선수로 만나기도 했다. 스웨덴 대표 공격수로 꼽히던 헨리크 라르손도 스웨덴 헬싱보리 감독으로 있으며 2015년 아들인 조던을 1군에 데뷔시키기도 했다.
데이비드 베컴 역시 아들 로미오 베컴과 브루클린 베컴을 아스날 유소년팀에 입단시켰다. 로미오와 브루클린은 아버지와 달리 축구에 별다른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다 현재는 선수생활을 그만두고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런데 아들 네 명이 모두 아버지와 같은 팀에 몸담는 경우도 있을까. 레알 마드리드 감독을 맡고 있는 지네딘 지단과 그의 아들들이 그렇다.
지단 감독의 장남 엔조 지단은 여덟 살때 레알 마드리드(이하 레알) 유소년팀에서 축구 생활을 시작해 레알의 모든 연령별 팀을 거쳐 왔다. 2014년에는 레알의 리저브팀인 레알 카스티야에 두 시즌 머무르며 78경기에서 7골 15도움을 기록했다.
지단 감독은 2016년 11월 30일 코파델레이 경기에서 아들 엔조를 1군 경기에 데뷔시켰다. 하지만 레알의 1군 진입 장벽이 너무 높은데다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해 결국 아들을 떠나보내야 했다.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일까. 현재 그는 본명인 ‘엔조 지단’이 아닌 ‘엔조 페르난데스’란 이름을 사용하며 스위스 로잔 스포르에서 주전 도약을 위해 경쟁하고 있다.
둘째 아들인 루카 지단도 형 엔조와 같이 레알의 유소년팀을 거쳐왔다. 루카는 지난 20일 리그 최종전인 레알의 비야레알 원정 경기에서 선발로 깜짝 출전하기도 했다. 지단 감독이 챔피언스리그 결승을 위해 케일러 나바스를 제외하고 키코 카시야까지 벤치에 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신뢰에도 루카는 팀이 2대0으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불안한 장면을 계속 연출하며 결국 두 골이나 실점을 허용해 양 팀을 통틀어 가장 낮은 평점을 받았다. 루카는 경기가 끝난 후 인터뷰에서 “나는 지단이 아니라 루카”라며 지단 감독을 아버지로 둔 부담감을 직접적으로 표출했다.
셋째 아들 테오 지단은 아버지를 따라 공격형 미드필더로 현재 레알 마드리드 카데테B팀(14-15세팀)에서 활약 중이다. 넷째 아들 엘랴스 지단 역시 레알 유소년팀에 몸담고 있다. 엘랴스는 지난해 4월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환상적인 골을 터뜨리며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은 그들이 과연 어느 정도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 분명한 건 그들이 세계적인 축구 스타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아버지의 이름을 자신의 실력으로 지워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는 점이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