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통역하지 않아도 된다”며 건너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태도를 ‘위트’로 받아들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발언은 외교적 결례 논란으로 이어졌지만, 청와대는 특유의 쇼맨십으로 신뢰감을 드러낸 표현으로 해석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24일 춘추관에서 기자들을 만나 “그 발언의 해석은 잘못 전해진 것으로 생각된다. (녹취록의) 원문을 확인하면 알 수 있다”며 “‘(문 대통령의 발언이) 좋은 말일 것이기 때문에 듣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로 받아들였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덕담 주고받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상황은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벌어졌다. 트럼프 대통령과 나란히 앉은 문 대통령은 기자들로부터 “청와대가 (미국과 북한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강조했지만 지금의 국면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북한의 태도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문 대통령은 우리말로 “최근 북한의 태도 변화로 북·미 정상회담의 성사에 대한 걱정도 있지만 예정대로 열릴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내 역할은 미국과 북한 사이를 중재하는 입장이라기보다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해, 또 그것이 한반도와 대한민국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미국과 긴밀하게 공조하고 협력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답했다.
“통역하지 않아도 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그 다음에 나왔다. 백악관이 공개한 녹취록에서 문 대통령 발언 직후의 트럼프 대통령의 말은 “And I don't have to hear the translation because I'm sure I've heard it before(Laughter)”로 기록됐다. 마지막에 ‘웃음(Laughter)’이라는 별도의 지문이 붙어 트럼프 대통령의 표정도 묘사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통역해 들을 필요도 없다. 이미 들은 말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으로 직역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과 정상회담, 전화통화로 수차례 대화하면서 공감하고 있는 대북기조를 여전히 신뢰한다는 취지로 풀이할 수 있지만, 일각에서는 ‘무시하고 넘어갔다’는 식의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백악관 녹취록에서 괄호 안에 쓰인 ‘웃음’을 비웃음으로 본 시각도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북·미 정상회담 강행을 압박할 목적으로 문 대통령에게 결례를 범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청와대의 해석은 달랐다. 평소 즉흥적인 화법을 즐기고 쇼맨십도 강한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에 대한 신뢰감과 친근감을 드러낸 표현으로 봤다. 청와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전체적으로 좋은 분위기로 풀이되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해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