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실 블라인드 열면 안 된다”… 北 풍계리 핵실험장 가는 길

입력 2018-05-23 23:21 수정 2018-05-23 23:40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참관하는 남한 및 해외 취재단이 기차를 타고 풍계리로 향했다고 23일 AP통신은 원산발로 보도했다.

취재에 막판 합류한 한국 기자 8명을 포함,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취재단은 23일 밤 기차로 풍계리를 향해 원산역을 출발했다. 이들은 열차로 8~12시간 이동한 뒤 버스로 갈아타 수시간을 이동한다. 그런 다음 사람들이 드문드문 거주하고 있는 동북 내륙의 산악지대 오지에 소재한 핵실험장까지 1시간가량 직접 등반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동 중인 취재진은 한 객실에 침대 4개가 있는 침대열차로 인도됐다. 각 객실은 블라인드로 창문이 가려졌는데, 블라인드를 열어서는 안 된다는 지침을 들었다고 한다. 핵실험장 폐기는 직접 참관하도록 하지만, 풍계리까지 이동하는 것은 비밀에 부치려는 것으로 보인다.

취재진들은 여행 경비를 직접 부담할 것으로 전해진다. 기차 요금은 1인당 왕복 75달러(8만원)였고 매 끼니 식사비는 20달러(2만1000원)이었다.

한편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를 취재할 한국 공동취재단은 이날 남북 직항로를 통해 뒤늦게 방북했다. 윌 리플리 미국 CNN방송 기자는 이날 오후 3시5분 트위터를 통해 “한국 기자들을 태운 항공기가 방금 전 원산에 착륙했다”며 “그들은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비자발급이 거부된 후 마지막 순간에 추가됐다”고 썼다.

북한은 이날 오전 정부가 통보한 취재단 명단을 수용했다. 통일부는 “판문점 연락채널 업무개시 통화 때 우리 측 2개 언론사 기자 8명의 명단을 북측에 통보했고, 북측은 이를 접수했다”며 “정부는 방북 승인 및 수송 지원 등 필요 조치를 조속히 취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한국 취재단은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정부 수송기(VCN-235)를 타고 동해 직항로를 따라 강원도 원산으로 이동, 외신 기자단과 합류했다. 원산에는 기자단이 머물 숙소(갈마호텔)와 프레스센터가 있다.

앞서 북한은 앞서 핵실험장 폐기 행사에 한국 미국 영국 중국 러시아 5개국 언론사를 초청한다고 해놓고, 한국 취재단에만 방북 허가를 늦게 내줬다. 한국 취재단은 지난 21일부터 중국 베이징에 머물며 입국 허가 통보를 기다렸지만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해 이날 새벽 빈손 귀국한 상태였다. 나머지 4개국 기자단 20여명은 22일 오전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서 고려항공 전세기편으로 원산에 도착했다.

원산에서 풍계리 핵실험장이 시작되는 재덕역까지 거리는 약 416㎞로, 전용열차로 이동하는 데 12시간가량 걸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재덕역에서 위로 올라가면 경비 시설과 기술자 체류 구역이 있고 그 위에 갱도 지역이 있는 구조다. 국제기자단은 북한이 마련한 별도 장소에서 갱도 폭파 과정을 참관하게 된다.

이동 시간과 현지 기상 상황을 고려하면 북한이 당초 밝힌 대로 24~25일 중 갱도 폭파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북한 전문매체 38노스는 이날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위한 추가 준비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