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복에 수인번호 ‘716’ 배지 단 MB… “檢, 무리한 기소”

입력 2018-05-23 20:09
뇌물수수와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23일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모두진술을 작성한 서류를 손에 든 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 법정에 들어서고 있다. 공동취재단

불면증 탓인지 다소 수척… 지난달부터 지침 바뀌어 수갑은 차지 않은 채 출석
직업 묻자 쉰 목소리로 “무직”
앉아도 된다는 지적에도 끝까지 선 채로 입장문 낭독
휴정 땐 친이계와 눈인사도

이명박 전 대통령이 23일 낮 12시59분쯤 서울중앙지법에 모습을 나타냈다. 지난 3월 22일 서울동부구치소에 구속 수감된 지 62일 만이다.

이 전 대통령은 수의가 아닌 검은색 양복에 넥타이를 하지 않은 흰 셔츠 차림으로 교도관의 부축을 받으며 호송차에서 내렸다. 손에는 법정에서 낭독하기 위해 준비한 12분 분량의 입장문이 담긴 노란 서류봉투가 들려 있었다.

이 전 대통령의 얼굴은 구속 전보다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변호인들은 이 전 대통령이 구치소에서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 데다 불면증에 시달려 수면제를 복용하는 등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고 여러 차례 언론에 전했다.

호송차에서 내린 이 전 대통령의 손에서 수갑은 보이지 않았다. 이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구속 수감됐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해 같은 날 수갑이 채워진 채 법정에 출석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지난달 초부터 여성이나 65세 이상 노인, 장애인 등에 한해 구치소장의 허가로 수갑이나 포승줄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관련 지침이 변경됐다”고 설명했다. 77세인 이 전 대통령은 65세 이상 노인에 해당돼 서울동부구치소장의 허가 하에 수갑을 차지 않은 채 출석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통령은 오전 11시30분 구치소에서 점심 식사를 마친 뒤 낮 12시25분쯤 출발, 30여분 만에 법원에 도착했다. 이 전 대통령은 오후 2시 구속 피고인 대기실에서 형사대법정 417호로 입장했다. 무거운 표정으로 피고인석으로 향하는 이 전 대통령의 걸음을 따라 취재진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정계선 부장판사는 재판 시작에 앞서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재판 시작 전까지 법정 내 촬영을 허가했다”고 말했다.

재판부가 인적사항을 확인하기 위해 “직업이 뭡니까”라고 묻자 이 전 대통령은 쉰 목소리로 “무직입니다”라고 답했다. 양복 왼쪽 옷깃에 수인번호 ‘716’이 적힌 동그란 배지를 단 채였다. 앞서 호송차에서 내릴 때는 배지를 달고 있지 않았다. 이 전 대통령은 호송차에 배지를 떨어뜨렸다가 법정에 출석하면서 다시 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대통령 측 변호인인 강훈 변호사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부인했다.

재판부가 “피고인, 변호인과 마찬가지로 공소사실 부인하는가”라고 묻자 이 전 대통령은 “네. 그렇습니다”라고 답했다. 이어 “공소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 검찰도 속으로는 인정할 것”이라며 “무리한 기소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대통령은 법정에서 미리 준비해온 입장문을 낭독했다. 재판부가 “앉아서 해도 된다”고 했으나 이 전 대통령은 선 채 낭독문을 끝까지 읽었다. 낭독문을 읽는 도중 마른기침을 하며 잠시 정적이 이어지기도 했다.

이날 법정에는 대표적 친이계 인사인 이재오 자유한국당 상임고문이 참석했다. 오후 3시6분쯤 재판이 잠시 휴정되자 이 전 대통령은 법정 밖으로 나가며 이 상임고문과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검찰은 앞서 기소했던 다스 비자금 횡령, 국정원 자금 수수, 삼성그룹 뇌물 수수 등 내용과 관련된 관련 증인과 물증 목록 등을 구체적으로 밝히며 향후 소송 계획을 밝혔다. 강 변호사는 “검찰의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것을 향후 소송을 통해 구체적으로 밝혀나가겠다”고 말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