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북한이 CVID를 결정한다면 정말로 북한 정권의 안전을 보장할 겁니까?
트럼프: “보장하겠습니다. 그건 처음부터 보장하겠다고 이야기해온 것입니다. 김정은은 안전할 것이고 굉장히 기쁠 것입니다. 북한은 굉장히 번영할 것입니다. 북한 국민은 아주 열심히 일하는 국민입니다. 북한 국민들을 위해서 또 한국을 위해서도 상당히 좋은 일이 될 것입니다. 미국은 아시다시피 지금까지 한국에 수조 달러의 지원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한국을 보시면 얼마나 세계에서 훌륭한 국가인지 다 아실 것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과의 단독 정상회담 모두에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많은 말을 했다. 회담 시간을 줄여가면서까지 그의 답변은 이어졌다. 먼저 눈에 띈 것은 “북미정상회담이 연기될 가능성도 있다”는 돌출 발언이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말은 따로 있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 말을 기다렸을지 모른다.
두 정상이 각각 모두발언을 한 뒤 기자들과 예정에 없던 문답을 이어갈 때 한 외신기자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물었다.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가 이뤄지면 북한 정권의 안전을 정말 보장할 것입니까?” 트럼프 대통령은 기다렸다는 듯이 “보장한다”고 답했다. 애초에 그럴 생각이었다고 덧붙였다. “김정은 위원장은 안전할 것”이라고도 했다. 북한이 핵폐기 조건으로 가장 절실하게 원하는 ‘체제보장’을 트럼프 대통령은 육성으로 확인해줬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도 한국과 같은 민족”이라며 “이번에 협상이 잘 이뤄진다면 김정은 위원장은 (번영한 한국처럼) 굉장히 기쁜 상황을 맞을 것이고, 만약에 잘되지 않는다면 솔직히 말해 그렇게 기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지금 김정은 위원장은 역사상 없었던 가장 큰 기회를 맞았다. 뭔가를 해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다. 북한 국민뿐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 한반도를 위해서 굉장히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지금 김정은 위원장의 손 안에 있다”고 강조했다.
또 “한 가지 더 중요한 말씀을 덧붙이겠다”면서 “한국과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 대통령이 내 옆에 계십니다. 이 3국과 내가 대화를 했다. 이 3국 모두 북한을 도와서 북한을 아주 위대한 국가로 만들기 위한 아주 많은 지원을 지금 약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김정은 체제의 안전을 보장할 뿐 아니라 막대한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겠다고 제시한 것이었다. 중요한 부분은 ‘체제 보장’이다. 이를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말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김대중정부 시절 대북 특사로 활약했던 박지원 의원은 23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트럼프 입에서 나온 ‘체제보장’ 약속에 북한도 만족해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입에서 체제 안전 보장이라는 말이 직접 나온 게 처음”이라는 사회자의 말에 박 의원은 “북한이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때도 그런 얘기를 했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으로부터 체제 안전을 보장 받고 싶은 것”이라며 “폼페이오 국무장관 입에서는 나왔지만 트럼프 대통령 입에서 체제보장 얘기는 안 나고 경제지원 얘기만 나오니까 사실상 북한으로서는 좀 자존심도 체면도 구겼던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이번에 북한의 제일 큰 소득은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체제보장을 하겠다고 밝힌 것”이라며 “이게 나왔기 때문에 오늘부터라도 북미 간에 어디선가 대화가 다시 시작될 것이다. (협상) 2라운드로 접어들었다고 본다”고 했다.
이번 한미정상회담과 곧바로 이어질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둘러싸고 한반도는 ‘롤러코스터 국면’이 거듭되고 있다. 판문점 선언 이후 순항하던 남북관계와 북미정상회담 준비는 지난주 ‘김계관 담화’로 갑작스러운 경색 국면에 진입했다. 북한의 ‘돌변’이라고 표현해야 할 만큼 한국과 미국을 향한 비판은 거칠었다. 북미정상회담을 ‘재고려’하겠다고까지 했다.
김계관 담화가 발표된 지 꼭 엿새 만인 22일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현장을 취재할 남측 기자단 명단을 접수했다. 줄곧 명단 접수를 거부하더니 23일부터 진행될 폐기식을 하루 앞두고 막판에 태도를 바꿨다. 베이징으로 출국했던 취재진은 남북 직항로를 이용해 원산으로 가서 베이징~원산 항로를 이용한 외신기자들과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남측 취재진 명단접수는 한미정상회담이 끝난 지 몇 시간 만에 이뤄졌다. 북미정상회담을 조율하고 중재하는 자리였던 이 회담의 결과가 북한의 태도 변화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확실치 않다. 한미정상회담 역시 돌발적인 상황과 예상 밖의 발언이 속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6월 1월 북미회담의 연기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회담 후 두 정상은 북미회담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기” 발언에 북한이 ‘남측 취재진 허용’이란 우호적 제스처를 취한 것인지,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6·12 성공 노력” 합의에 그렇게 한 것인지 분명치 않지만 어쨌든 북한은 6일간 한껏도 얼어붙어 있던 한반도 해빙 무드에 다시 불씨를 댕겼다. 이런 상황이 얼마나 지속될지 역시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국면이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