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식의 남측 취재단 명단을 23일 뒤늦게 접수했다. 북한은 최근 남북 고위급회담을 돌연 취소하고 핵실험장 폐기식 취재단에서 남측 기자만 제외하는 등 냉담한 태도를 보여 왔다.
통일부는 이날 “판문점 채널을 통해 우리측 2개 언론사(MBC, 뉴스1) 기자 8명의 명단을 북측에 통보했고, 북측은 이를 접수했다”고 밝혔다. 미국 영국 러시아 중국 4개국 외신기자단은 22일 베이징에서 고려항공 전세기를 통해 원산으로 들어갔다. 남측 취재진도 남북 협의 과정을 지켜보며 베이징 공항에서 대기했지만 이동이 무산되자 귀국했다.
4·27 남북정상회담으로 평화 분위기가 고조됐던 남북 관계는 북한이 지난 16일 예정됐던 남북 고위급회담을 당일 취소하면서 급격히 경색됐다. 북한은 당시 한·미 공군연합훈련인 ‘맥스선더’를 문제 삼았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맥스선더를 “판문점 선언에 대한 노골적 도전이며 조선정세 흐름에 역행하는 고의적 군사도발”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갑작스러운 조치였다. 북한은 지난 15일 오전 고위급 회담 날짜를 16일로 먼저 제안했다. 맥스선더는 그보다 앞선 11일부터 시작됐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일정을 공지한 것은 12일, 남측 언론 초청 통지문을 보내온 것은 회담 날짜를 제안했던 15일이다. 이미 한·미 공군연합훈련이 시행되고 있는 것을 알았던 북한이 돌연 회담을 취소하고 북미 회담 ‘재고’까지 경고했다.
이를 두고 여러 해석이 나왔다. 최근 미국 여러 매체에서 북한의 인권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가 나온 것을 겨냥한 메시지라는 분석부터 심지어 판문점선언이 모두 ‘쇼’였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중 북한이 미국과 비핵화 담판을 앞두고 최대한 주도권을 잡기 위해 ‘기싸움’을 벌이는 것이라는 관측이 가장 우세했다. 북한이 이전부터 자주 사용해온 협상전략이라는 것이다.
북한이 극적으로 남측 취재단 명단을 접수하면서 약 1주일간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는 결국 ‘대화 단절’이 아닌 비핵화 협상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전략이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적인 개최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남측 취재단 명단이 접수된 22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만나 북미 회담 성공을 위해 힘을 모으기로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건이 맞지 않으면 (북미 회담이) 연기될 수 있다”면서도 북한이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를 수용할 경우 체제안전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남측 취재단은 남북 직항로를 이용해 원산에 간다. 평창올림픽을 앞둔 지난 1월 31일 남측 스키선수 등 우리 대표단은 전세기를 타고 양양공항에서 출발해 원산 갈마비행장까지 이동한 바 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