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재임용 스트레스로 쓰러진 계약직 공무원… “업무상 재해 맞다”

입력 2018-05-23 07:47

축제기획일을 하던 최모(40)씨는 2015년 4월 9급 임기제 공무원으로 채용됐다. 근무지는 지방의 한 도립 국악원이었다. 업무평가가 좋으면 1년 뒤 재계약할 수 있고 2년을 채우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될 수 있는 자리였다. 네 식구의 가장이었던 최씨는 안정적 생활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최씨는 국악원 공연기획실 내 유일한 홍보담당자였다. 실제 맡겨진 업무는 홍보 외에도 다양했다. 국악원이 추진하던 공연 유료화 사업도 전담했다. 6개월간 공을 들이던 공연 유료화 사업은 여론 악화로 무산되고 말았다. 최씨는 동료에게 “재계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불안하다”고 고충을 토로했다고 한다.

개원 30주년을 맞은 2016년에는 연초부터 행사가 쏟아졌다. 국악원장의 인터뷰 시나리오까지 작성해야 했다. 월평균 29시간의 초과근무를 하면서 공연장 지정좌석제 도입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도입 첫날 시행착오로 민원이 빗발치자 평소 힘든 내색을 하지 않던 아내에게도 “불안하고 힘들다. 내가 성과를 보여야 한다”며 불안감을 호소했다.

같은 해 3월 21일 최씨는 독감 때문에 병가를 낸 뒤 승용차를 운전해 집으로 가던 중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다행히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져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최씨는 공무원연금공단에 요양 승인을 신청했지만 “공무와 상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불승인했다. 최씨는 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법원은 최씨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단독 박용근 판사는 “공무원으로 임용된 후 낯설고 과중한 업무에 부담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신입인데다 최하위 임기제 공무원인 최씨가 도지사와 도청 문화체육관광국에 대한 보고업무까지 전담한 사정 등을 더해보면 스트레스가 매우 컸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판사는 “추진하던 사업들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과로와 스트레스 외의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