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리비아식 비핵화(선 핵폐기, 후 보상)’를 놓고 발생한 갈등으로 ‘안갯속’에 빠진 북미정상회담에 대해 “99.9% 성사된 것으로 본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문재인 대통령의 1박4일간 미국 공식실무방문을 수행하고 있는 정 실장은 21일(현지시간) 워싱턴행 기내간담회를 통해 이 같이 밝히면서 “그러나 여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대비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실장의 발언은 당초 6월 12일로 예정됐던 북미정상회담의 개최 가능성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제기되는 점을 일축한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뉴욕타임스(NYT)는 미 행정부 관리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16일 경제적 지원을 대가로 핵무기 능력을 양도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문 발표에 놀라고 화를 냈으며, 측근들에게 정치적 부담을 안고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강행해야 하는지 묻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 실장은 NYT 보도에 대해 “저희가 감지하는 건 없다”며 “NSC 협의나 정상 간 통화에서도 그런 느낌은 못받았다”고 했다.
정 실장은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만남이 굳건한 한미공조를 재확인하면서 북미정상회담을 본 궤도에 올려놓기 위한 회담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이 우선 반드시 성사돼야 하고, 성사가 되면 거기서 우리가 바라는 방향으로 합의가 이뤄지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 두 가지 목표를 위해 지금 어떻게 두 정상이 목표지점까지 갈 수 있느냐에 대한 여러 아이디어들을 공유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 실장은 이번 한미정상회담의 성격에 대해 “짜인 각본이 전혀 없다”며 “두 정상 차원에서의 솔직한 의견 교환이 주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대개 정상회담은 사전에 많은 조율이 있고 합의문도 어느 정도 99.9%까지 사전 조율이 끝나는 게 관행이지만 이번 정상회담은 그런 게 일체 없다”며 이 같이 말했다.
이런 발언은 문 대통령의 미국 방문이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의 성사와 성공을 위한 정상 간 ‘굳건한 신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리비아식 비핵화(선 핵폐기, 후 보상)’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 북한의 의중을 미국에 이해시키는 동시에 한미 공조를 통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세부 로드맵을 조율하는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동시에 해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두 정상이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6월 12일로 예정됐던 북미정상회담을 다시 본 궤도에 올리는 일이 시급하다는 게 청와대의 인식이다. 정 실장은 “정상회담 진행 방식도 과거 정상회담과 달리 두 정상 간 만남 위주로 하기로 했다”며 “수행원들이 배석하는 오찬 모임이 있긴 하지만 두 정상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솔직한 의견 교환을 갖는 식의 모임을 하자고 한미 간에 양해가 돼 있다”고 설명했다.
영빈관 블레어하우스에서 1박을 한 문 대통령은 이튿날 오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 미국 외교안보 고위 당국자들을 접견한다. 정오쯤 트럼프 대통령과 단둘이 통역만 배석시킨 채 단독회담을 통해 북한을 완전한 비핵화로 이끄는 방안을 논의한다. 단독회담 후에는 참모들이 참석하는 확대회담을 이어간다.
단독회담과 확대회담에서 양 정상은 한반도 비핵화 로드맵과 관련한 의견을 조율하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특히 미국이 선호하는 일괄타결 프로세스와 북한의 단계적·동시적 해법 사이의 접점을 찾는 데 시간을 할애할 것으로 예상된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