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각) 오후 5시40분 미국 워싱턴 앤드류스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22일까지 1박2일간 워싱턴에 머물며 공식실무방문(Official Working Visit) 일정을 소화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원포인트 정상회담’ 등 최소한의 일정만 잡았다.
영빈관 블레어하우스에서 1박을 한 문 대통령은 이튿날 오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 미국 외교안보 고위 당국자들을 접견한다. 정오쯤 트럼프 대통령과 단둘이 통역만 배석시킨 채 단독회담을 통해 북한을 완전한 비핵화로 이끄는 방안을 논의한다.
단독회담 후에는 참모들이 참석하는 확대회담을 이어간다. 두 회담이 끝난 뒤에도 공동 언론발표 자리는 예정돼 있지 않다. 두 정상의 합의 도출을 위해 마련된 자리가 아니라 북미정상회담을 중재하기 위한 회담이어서 그렇다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한미정상회담은 문 대통령 취임 후 네 번째다. 지난해 7월 독일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회의 당시 한·미·일 정상 만찬회동을 포함하면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은 문 대통령 취임 후 5번째가 된다.
단독회담과 확대회담에서 양 정상은 한반도 비핵화 로드맵과 관련한 의견을 조율하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특히 미국이 선호하는 일괄타결 프로세스와 북한의 단계적·동시적 해법 사이의 접점을 찾는 데 시간을 할애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 대통령의 중재 역할은 결코 쉽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의 반발 배경을 이해시키고, 한·미 공조도 재확인하며, 북한 비핵화를 위한 세부 로드맵도 조율해내야 한다. 문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을 불과 20여일 앞두고 불거진 북·미 간 불신을 털어내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 대통령은 우선 체제 안전 보장과 관련된 북한의 의중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할 것으로 관측된다. 구체적으로는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중대 조치를 취할 경우 완전한 비핵화 이전이라도 미국이 내줄 수 있는 보상 문제가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완전한 비핵화의 길로 들어서긴 했는데, 실제 트럼프 행정부와 세부 의제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예상 밖의 강한 요구들이 나오자 주춤하는 것 같다”며 “한·미 정상이 북한에 ‘비핵화를 해야만 경제적 보상 등 밝은 미래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북한의 태도 변화와 관련, 북·중 관계 밀착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는 점도 문 대통령이 적극 설명할 부분이다. 이는 비핵화 논의가 ‘한·미 대 북·중’의 대립 구도로 흘러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다.
23~25일로 예정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는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미국에 확인시키는 계기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있다. 시점상 한·미 정상회담 종료 후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가 이어지는 수순이어서 북한 역시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주목할 것으로 보인다.
한·미 간 비핵화 조율이 순조롭게 이뤄지면 최근 경색된 남북 관계도 자연스럽게 풀릴 전망이다. 북한이 한·미 연합 공중훈련을 문제삼아 남북 고위급 회담을 일방 취소하고, 탈북자 송환 등 민감한 문제를 들고 나와 한국을 압박하는 건 미국에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전직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시한이 합의되고 그것이 이행될 경우 언제부터 제재를 완화한다는 식의 구체적 성과물이 나올 수 있도록 사전에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한국 정부의 역할”이라며 “문 대통령은 중재자가 아닌 당사자로서 북·미 양측을 촉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 특유의 판 흔들기 전술에 맞서 한·미가 굳건한 공조를 재확인할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