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음달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을 계속 추진해야 하는지를 두고 참모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에서 ‘정치적 망신’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다.
NYT는 20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인 핵포기를 강요하면 북미정상회담을 재고려할 수 있다’는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 발표에 놀라면서 화를 냈다고 전했다.
매체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담화 발표 직후인 17, 18일 참모들에게 위험 부담을 떠안고 북·미 회담을 계속 진행할 건지 질문을 퍼부었다. 급기야 19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북한의 공식 담화와 판문점 회담 이후 문 대통령이 자신에게 전달한 내용이 왜 모순되는지 물었다.
이날 통화는 문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을 사흘 앞두고 갑자기 이루어졌다. 일부 미 정부 관계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의 방문을 기다릴 수만은 없다는, 현 상황을 불쾌해 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NYT에 따르면 참모들은 노벨상을 염두에 둔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회담을 지나치게 갈망하는 듯한 신호를 보인다는 점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열망을 포착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질 약속’을 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 협상에서 미국이 양보할 수 없는 핵심 요소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세부 협상략에 대해서도 우려가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 버락 오바마·조지 부시 W. 대통령과는 달리 우라늄 농축 능력이나 플루토늄 재처리, 핵무기 생산 및 미사일 프로그램 등에 대한 세세한 브리핑을 듣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는 게 참모들의 전언이다.
반면 최근 두 차례 방북을 마치고 돌아온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은 김 위원장에 대해 ‘복잡한 논의에도 아주 능할 정도로 영리하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문 대통령 역시 김 위원장이 핵 프로그램에 대한 모든 요소들을 매우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 관리들은 지금까지 싱가포르 회담에서 북미 두 정상이 비핵화에 동의하고 이를 위한 향후 6개월 간의 일정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일부 핵무기를 없애고, 핵무기 생산시설을 폐쇄하며, 북한 내에서 사찰단이 활동하는 것을 허용하는 등의 내용에 합의할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진정으로 북미 정상회담 성공을 기대한다면 기대치를 낮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셉 윤 전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트럼프가 6개월 안에 북한이 아무 보상 없이 핵무기를 양도할 것으로 기대한다면 그것은 비현실적”이라면서, 결국 트럼프 대통령도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전임 대통령들이 시도한 단계적 조치를 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아시아 선임보좌관을 지낸 마이클 그린 조지타운대 교수는 포린어페어스에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보다 훨씬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린 교수는 “김정은은 북핵의 미래에 관한 체스판과 동북아의 지정학적 미래에 관한 체스판, 두 개의 게임을 놓고 멀티플레이어가 되려 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잘못된 게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