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 사무실 금고에는 20년째 잠자고 있는 특별한 시계가 있다. 구본무 회장은 끝내 이 시계를 주인에게 전달하지 못한 채 20일 눈을 감았다.
고인은 야구를 좋아했다. LG 트윈스가 1990년 MBC 청룡을 인수할 때 초대 구단주를 맡았다. 우수한 선수들을 데려오는 데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선수단의 사기 진작을 위해 해외 야구 캠프를 방문하기도 했다. LG뿐 아니라 프로야구에 애정이 깊은 열성팬이었다.
구 회장은 1990년과 1994년 두 차례 우승 이후 팀의 세 번째 우승을 간절히 기원하며 선물을 마련했다. 1997년과 1998년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그치자 선수에게 동기 부여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해외 출장 때 구매한 8000만원짜리 롤렉스 시계를 한국시리즈 MVP에게 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 시계는 금고에서 20년째 주인을 찾지 못한채 잠들어 있다. 1995년 3대 회장으로 취임해 23년간 LG를 이끄는 동안 결국 시계 주인을 찾지 못했다. LG트윈스는 2002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준우승에 그쳤다.
LG 트윈스 관계자는 “구본무 회장님은 LG의 초대 구단주였고, 워낙 야구를 사랑한 분이다. 야구와 구단에 애정이 많았다. 최근 야구장에 오신 적은 없지만, 원래 야구장을 많이 찾았었다. 혼자 조용하게 관람하는 걸 즐기셨다”고 전했다.
LG 선수단은 고인을 추모하며 이날 한화 이글스전에서 왼팔에 근조 리본을 달고 뛰었다. 응원단장과 치어리더를 빼고, 앰프 사용도 자제했다. LG는 이날 한화전 6연패 사슬을 끊고 첫 승리를 거뒀다.
정지용 기자 jyje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