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 커뮤니티 ‘서울대학교 대나무숲’에서 19일 혜화역 시위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시위에 대한 찬반 여론은 물론 중립적인 입장을 보이는 이들이 뒤엉켜 혼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논쟁은 혜화역 시위를 가까이서 지켜본 학생이라는 네티즌이 20일 새벽 올린 글에서 촉발됐다. 당시 일부 시위대가 사용한 혐오적인 구호와 팻말 때문에 집회 취지가 퇴색했다는 취지의 글이었다.
글쓴이는 참가자 중 일부가 안전 유지를 하는 의무경찰을 향해 ‘남경들아 분위기 X창 내지 말고 웃어’라는 팻말을 들이밀고 ‘재기하라(남성인권운동가 고 성재기씨가 투신 사망한 것을 희화한 표현)’등 극단적인 구호를 내세웠다고 주장했다. 또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지인들의 SNS에도 이와 비슷한 남성혐오 표현들이 줄줄이 올라왔다고 말했다.
글쓴이는 이에 대해 “서정범교수 자살사건, 워마드 비공개게시판의 몰카들, jtbc몰카사건처럼 남자가 피해자임에도 화제성이 부족하거나 언론의 이해관계와 맞지 않아 철저히 배제당한 사건들도 존재하는데도 남성 피해자들의 인격을 짓밟고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한 네티즌은 이런 표현을 ‘미러링’이라고 말하며 “애초 미러링이 왜 나왔냐를 생각하면 쉬운 문제다. 남초에서 ‘삼일한’ 등 쓸 때는 한번도 이렇게 공론화 시킨 적이 없었다”고 반박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서로 극단적인 워딩에 자극 받아서 더 싸움이 심해지는 꼴 아닌가 싶다”면서 “페미니즘이든 아니든 서로 도덕적인 수준에서 벗어난 소수의 사람들만 보고 그것을 부정하고 잘못되었다고 욕하고 손가락질하는 건 어떤 상황에서든지 간에 도움이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번 혜화역 시위는 홍익대 누드 크로키 수업 몰카 사건 이후 확산된 편파수사 논란으로 시작됐다. 경찰은 남성 혐오 커뮤니티 ‘워마드’에 홍대 남성 모델 몰카가 게시된 지 11일 만에 동료 여성 모델을 용의자로 검거했다. 이후 사법기관이 만연한 여성 대상 몰카 범죄에는 소극적으로 대처했다는 분노가 터져나왔다.
이날 집회는 포털사이트 다음 카페 ‘불법촬영 성 편파수사 규탄 시위’ 카페를 통해 모인 여성 1만2000여 명(경찰 추산 1만 명)이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집회 참가자들은 대부분 분노를 표현하는 빨간 옷을 입고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상태였다. 여성들이 몰카의 가장 큰 피해자라는 의미였다. 이들은 경찰 캐릭터인 포돌이 모습을 한 박을 깨뜨리는 가하면 대형 현수막에 그려진 법전에 물감을 던지는 퍼포먼스도 벌이기도 했다.
정치권도 여성들의 이러한 주장에 동감을 표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여성에 대한 국가의 보호를 요청하는 청와대 청원에 동의 한 시민들이 30만명을 넘어선 14일 성명을 내고 “여성 피해자에 대한 사건도 공정하고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강력하게 요구한다”고 밝혔다.
한편 실제 집회에 참가했다는 A씨는 “극단적 구호를 외치는 일부 참가자들을 대회 스텝들이 일일이 나서 제지했다”며 "공식 구호와 손팻말에는 남성혐오 표현이 사용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정지용 기자 jyje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