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 LG그룹 회장이 20일 별세했다. 향년 73세.
LG그룹 등에 따르면 구본무 회장은 20일 오전 9시52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구 회장은 올해 초부터 와병 상태였으며, 통원 치료를 받던 중 최근 들어 상태가 악화하면서 입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례는 고인과 유족의 뜻에 따라 비공개 가족장으로 진행된다.
구 회장은 LG그룹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손자이자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장남인 ‘LG가(家) 3세’다. 연세대 재학 중 미국으로 유학해 애쉬랜드대학과 클리블랜드주립대 대학원에서 각각 경영학을 전공한 뒤 귀국, 1975년 ㈜럭키에 입사하는 것으로 기업 활동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과장, 부장, 이사, 상무, 부사장 등의 직위를 차례로 거치면서 럭키와 금성사의 기획조정실 등 그룹 내 주요 회사의 영업, 심사, 수출, 기획업무 등을 두루 섭렵하며 다양한 실무경력을 쌓았다. 회사 생활을 시작한 지 20년 만인 1995년 그룹의 회장직을 승계받았다.
◆ 구본무 회장의 ‘뚝심 경영’… 글로벌 LG로
회장 취임 직전이었던 1995년 2월, 구 회장은 기업 CI를 ‘럭키금성’에서 ‘LG’로 변경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사내외 반대가 심했지만 글로벌 기업을 꿈꾸는 구 회장의 결단을 막지 못했다.
실제 구 회장은 23년간 LG를 이끌며 LG전자와 LG화학 등 여러 글로벌 기업을 키워냈다. 다양한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그룹 핵심 사업인 전기·전자와 화학 사업은 물론 통신서비스, 자동차부품, 디스플레이, 에너지, 바이오 등 신성장 사업 분야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 행보를 거듭했다.
1994년 말 10조원에 불과했던 해외 매출은 2014년 말 100조원대로 10배가 됐다. 해외법인은 90개에서 290개로 불어났다. GS, LS, LIG, LF 등을 계열 분리하고도 매출은 30조원대(1994년 말)에서 지난해 160조원대로 5배 이상, 해외 매출은 약 10조원에서 약 110조원으로 10배 이상 신장시키는 등 엄청난 성과를 거뒀다.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등 기업문화를 과감하게 바꿔 놓은 것도 고인의 업적 중 하나다. 2003년 LG는 국내 그룹기업 최초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 자회사가 본연의 사업에 집중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구 회장의 의중이 전적으로 반영된 것이다. 오너 일가의 경영권 방어와 3·4세들의 경영권 승계에 계열사가 동원될 가능성을 최소화했다는 평가다.
◆야구를 사랑한 구본무 회장의 ‘온화한 리더십’
구 회장은 평소 소탈하고 온화한 성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룹 내 행사일지라도 다른 임원들처럼 ‘회장 구본무’라고 적힌 이름표를 다는 등 의전이나 격식을 따지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5년 회장 취임 20주년 만찬도 식순 없이 CEO들이 모인 자리에서 조촐하게 끝냈다고 한다.
고인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꾸준히 사회공헌 활동을 펼쳤다. 최초의 환경보호 공익재단으로 1997년 LG상록재단을 설립한 데 이어 2015년에는 “국가와 사회정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의인에게 기업이 사회적 책임으로 보답하자”는 뜻으로 LG복지재단을 통해 ‘LG 의인상’을 제정했다. 지난해에는 강원도 철원에서 발생한 총기사고 병사 유가족에게 사비로 위로금 1억원을 전달하는 등 개인적인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야구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 LG트윈스 구단주로 활동하면서 자율경영을 구단 운영에 접목해 ‘깨끗한 야구, 이기는 야구’를 표방, 창단 첫해인 1990년 시리즈에서 예상을 뒤엎고 우승하는 신화를 이뤄냈다. 이후 동생 구본준 부회장에게 구단주 자리를 물려줬지만 1년에 몇 차례는 직접 경기장을 찾았고, LG트윈스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드러냈다.
◆동생의 아들을 양자로… 벗어나지 못한 ‘장자 승계’
구 회장은 동생 구본능 회장의 외아들인 구광모 LG전자 상무(당시 LG전자 B2B사업본부 정보디스플레이 사업부장)를 2004년 양자로 입적해 경영 수업을 받도록 했다. 구 상무에 대해서는 “겸손하고 소탈하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지만 일각에선 가시적인 경영 성과를 보여준 게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구자경 명예회장의 아들 4명 가운데 둘째와 넷째인 본능·본식 형제는 전자부품 생산업체인 희성그룹의 회장과 부회장으로 각각 재임하고 있다. 셋째인 구본준 LG그룹 부회장이 지금까지 맏형을 보필하면서 LG그룹 경영에 참여했지만, 조카인 구광모 상무가 경영권을 물려받으면 그 역시 독립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재계의 관측이다. LG그룹의 ‘장자 승계’가 얼마나 철저한지 보여주는 부분이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