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 LG그룹 회장은 “국가와 사회정의를 위해 희생한 의인에게 기업이 사회적 책임으로 보답한다”는 경영철학을 갖고 있었다.
조부 구인회 전 회장 영향을 받았다. 구인회 전 회장은 1947년 락희화학공업, 1959년 금성사를 설립한 LG의 창업주. 일제강점기 시절 상회를 경영해 큰돈을 벌면서 감시를 피해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던 사업가다. 구 회장은 1995년 LG그룹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조부의 생전 사회공헌 의지를 경영철학에 투영했다.
2015년 제정된 ‘LG 의인상’은 이런 철학이 실현된 민간 표창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영웅들을 찾아 수천만원에서 최대 1억원까지 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수상자는 LG복지재단 의인상 선정위원단에 의해 선정된다. 지금까지 72명이 이 상을 받았다.
첫 수상자는 2015년 9월 교통사고 피해 여성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신호위반 차량에 치여 숨진 고(故) 정연승 특전사 상사. 그 이후 호수에 빠진 차량 속 시민을 구하기 위해 주저하지 않고 뛰어든 고교생 김지수·성준용·최태준군, 지하철 선로로 떨어진 시각장애인을 구한 최형수 해병대 병장, 자신을 가족처럼 보살핀 할머니를 구하기 위해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구한 스리랑카 노동자 니말씨 등 다양한 연령, 직업, 국적의 영웅들이 LG 의인상을 받았다.
‘투스카니 의인’ 한영탁(46)씨는 구 회장의 생전 마지막 수상자가 됐다. 한씨는 지난 12일 제2서해안고속도로 하행선에서 의식을 잃은 운전자 A씨를 구조해 LG 의인상을 수상했다.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으며 전진하던 코란도 차량을 발견, 자신의 투스카니 차량으로 앞을 가로막아 고의적으로 접촉사고를 내 세우는 기지를 발휘해 A씨의 목숨을 구하고 다중 추돌사고를 막았다. 무관심과 이기심이 학습되는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린 사건이었다.
구 회장은 그 사이 숙환을 앓고 있었다. 지난해부터 수차례 뇌수술을 받았고 최근 병세 악화로 입원했다. 그리고 20일 오전 9시52분 가족이 지켜보는 앞에서 영면에 들었다. 향년 73세. 유족은 연명치료나 요란한 장례를 원하지 않았던 구 회장의 뜻에 따라 조용하고 간소한 비공개 가족장을 치르기로 했다. 유족은 부인 김영식씨, 아들 구광모 LG전자 상무, 딸 연경·연수씨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