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알고 싶다'에 잔혹한 역사가 기록됐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일이다.
19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특집 2부 '학살을 조작하라' 편이 방영됐다.
1980년 5월 광주는 피로 얼룩져 있었다. 죽은 이들의 160여장의 사진을 본 법의학자들은 "사후에도 방치됐다. 많은 강력범죄를 봤지만 이건 아니다. 광주에서 뭔가가 있었는지 정확히 모르는 분들은 충격 받을거라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제까지 한번도 방송에 공개된 적 없는 사진이었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이제라도 그날의 참상을 알리고 싶다며 모자이크도 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죽기에는 이른 10살도 되지 않은 아이, 신체 일부가 잘린 시신, 온 몸에 벌집처럼 구멍난 이들도 있었다.
당시 19세였던 고(故) 박현숙씨도 그날의 희생자였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잠시 안정을 찾은 광주 시내에는 시민들을 위한 무료 버스가 운영됐다. 현숙씨는 시위 현장에서 숨진 이들의 장례를 위해 관을 구하러 화순으로 떠나기로 했다. 학생들과 시민 10여명을 태운 버스는 시내를 지나 주남마을로 향하다 저지당했다. 갑자기 나타난 공수부대 군인들이었다.
길가에 매복돼 있던 공수부대원들은 시민들이 탄 버스를 향해 일제히 총구를 겨눴다. 목격자는 "버스에 총을 어마어마하게 쐈다"고 말했다. 버스에 있던 시민들이 대부분 사망했다. 현숙씨도 마찬가지였다. 유일한 생존자는 고등학생 홍금숙씨다. 홀로 살아남은 홍금숙씨는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날 버스에 있던 현숙씨를 포함한 여성들의 시신에는 총상 외에 또다른 상처들이 있었다. 유성호 법의학자는 "왼쪽 가슴에 칼에 찔린 손상이 있다. 왜 총창과 자창이 같이 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호 교수 역시 "총창을 입고 사망한 상태 이후에 가슴부에 자창 흔적이 있다. 엄격히 말하면 사후손괴"라고 분석했다.
당시 주남마을 버스 총격사건을 목격한 한 공수부대원은 양심선언을 했다. 최영신씨는 "주남마을 양민학살을 증언한 것은 잘 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 중 청년 2명은) 치료를 받았으면 지금도 살아있었을 것이다. (상관이 부대원들에게) '처단하라'고 했고 이후 총성이 들렸다. 소나무에 핏자국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저항할 수 없는 중상을 입은 사람들을 사살하라고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당시 거기 있던 계엄군들은 다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처단하라'고 명령한 장교는 포도밭을 운영하며 귀농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는 "38년 전 일 때문에 찾아왔다"는 제작진에게 "나도 피해자"라는 알 수 없는 넋두리를 했다.
한 제보자는 "내가 목격한 장면은 영화에서도 다 담지 못했다. 제보하라고 나오는데 너무 좋았다. 근 40년만에 밝혀지는구나"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주남마을 인근에 사는 언니 집에 갔다 겪은 일을 털어놨다.
제보자는 "동네 사람들은 그냥 다 도망다녔다. 형부는 언니네 살구나무 위에 올라가서 날 새고 내려오기도 했다. 시위에 참여 안했는데도 그냥 총을 쏘고 다녔다"고 떠올렸다.
그는 아직도 마당에 숨어서 본 장면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군인들이 검문을 하며 남성들을 끌고 가 죽였다는 것이다. 그는 "검문해서 데리고 올라간 다음 총소리가 났다. 다 죽이고 자기들만 내려왔다. 내가 본건 11명이었다. 5명 한번, 6명 한번"이라고 밝혔다.
너무도 많은 사람이 이런식으로 죽었다. 특히 김부열 씨가 어디서 어떻게 사망했는지는 지금까지도 알 수 없다. 그는 얼굴 없이 발견됐다. 법의학자들은 "목은 부패에 의해 없어진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사후 강제로 훼손했을거다. 생전에는 절단할 수 없다. 남아있는 몸에서 사인을 찾지 못 한다는건 없어진 부위에 사망 원인이 있다는거다"고 분석했다.
11살 전재수 어린이의 죽음 역시 마주하기 힘들었다. 송암동에 살던 전재수 어린이는 군인 차량을 보고 신기해 손을 흔들다 총에 맞아 숨졌다. 무려 10발이 넘었다. 중학생 방광범 학생은 단 한발의 총에 사망했다. 조준사격이었다.
한편 미국 국립문서보관소(NARA)에는 당시 전두환의 행적이 확인됐다. 30년 만에 봉인 해제된 5.18 관련 문건에서 ‘5.18 북한군 개입설 최초 유포자’가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해당 문건에는 “군의 실력자 전두환 장군이 (광주에) 군사작전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며 실질적인 학살의 주체라는 사실이 드러나 있었다.
이재의 5.18 기념 재단 자료위원은 “5.18 북한군 개입설 최초 유포자는 바로 전두환”이라고 강조했다.
전두환은 “자위권 발동도 가능하다는 계엄 사령부의 작전지침”이라는 입장을 내놨었다. 이후 “요즘 사람들은 5.18은 다 내가 한 줄 안다”고 말하기도 했다.
피로 물든 그날의 광주. 이유도 모른 채 죽은 이들은 무수히 많은데, 죽인 이들은 말이 없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