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청년-윤정민] 보육원 천사들의 든든한 삼촌

입력 2018-05-18 15:10
‘아이를 싫어하는 내가 어떻게 기저귀를 갈지.’

윤정민 플레이그라운드 대표가 최근 서울 성동구 이 카페에서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리며 활짝 웃고 있다. 신현가 인턴기자

카페 ‘플레이 그라운드’ 윤정민(39·서울 무학교회) 대표는 2006년 교회 청년부 프로그램이었던 보육원 나들이에 따라 나섰다가 난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네 살배기 남자 아이를 맡았는데 정서적으로 늘 불안했던 아이가 설사를 한 것이다.

윤 대표는 평소 식당에서 떠드는 아이가 있으면 부모에게 어떻게든 불만을 표현했고 아이를 귀찮아했다. 그랬기에 아이 돌봄은 쉽지 않았고 그날의 경험은 특별했다.

최근 서울 성동구 왕십리로 카페에서 만난 윤 대표는 “아이를 싫어했던 제가 그 일을 계기로 보육원 봉사를 10년 이상 했다는 게 너무 신기하지 않느냐”며 “보육원 봉사는 터닝 포인트가 됐고 이로 인해 비전도 생겼다”고 했다.

모태신앙을 가졌던 그는 20대 중반부터 베이스기타 연주자로 일했다. 주말 공연으로 주일성수를 못하다 점점 교회를 등졌고 이후 여러 악재가 잇따라 터졌다. 영혼이 바닥을 치던 그 때 다시 교회에 돌아왔고 보육원 봉사를 하면서 영적 침체기를 극복했다.

윤 대표는 ‘무학교회 신망원 봉사팀' 10명의 회원들과 매월 둘째 주 토요일 경기도 양평군 신원리에 있는 보육원 ‘신망원'에 방문한다. 신망원엔 영유아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친구들이 있다.

처음 3년 동안은 특별한 프로그램을 하지 않았다. 화장실 청소와 빨래 널고 개기, 숙제 도와주기 등 그곳에서 필요로 하는 일을 했다. 그러다 교육학을 전공한 봉사팀원의 제안으로 ‘달란트 시장'을 시작했다. 받기만 하는 아이들이 주체적인 삶을 살도록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아이들은 한 달 동안 보육원 교사를 도와주거나 심부름 하기 등을 하면 달란트를 받는다. 봉사팀은 선물과 간식을 준비해 매월 달란트 시장에서 아이들이 달란트로 원하는 걸 사도록 한다. 그는 “아이들이 달란트 시장을 엄청 기다린다”고 귀띔했다.

오랜 시간 동안 봉사하면서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은 커다란 기쁨이다. 처음 만났던 네 살배기 아이는 어느 새 고등학생이 됐다.

“부모 마음이라고까지 감히 말할 순 없지만 아이들을 보면 애틋하고 사랑스러워요. 삼촌이라고 했다가 형아, 선생님 등 자기들 마음대로 불러요(웃음).”

윤 대표의 비전은 보육원 친구들의 ‘멘토’가 돼 이들이 자립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스무 살이 넘은 친구들은 이곳에서 퇴소해야 한다. 몇 년 전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이들이 나쁜 길로 빠지거나 생활고로 인해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아이들과 잠깐 놀아주고 선물을 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어요. 보육원을 퇴소하면 의지할 데가 없어 방황하는 걸요. 아이들이 꿈을 갖고 일하도록 실질적으로 도와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카페를 시작했죠.”

학부에서 인테리어와 건축을 전공한 그는 2016년 카페를 오픈했다. 공사에 직접 참여하며 인건비를 줄였다. 카페를 키워 보육원 친구들이 원하면 바리스타로 훈련시켜 고용할 계획이다. 지난해부턴 물 유통사업도 시작했다.


“세상에서 잘 사는 게 자랑이 아니더라고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게 자랑할 만한 일이죠. 아이들의 자립을 위한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어요. 그들이 살 집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거 생각하면 돈을 많이 벌어서 땅도 사고 싶구요(웃음).”

그는 보육원 봉사를 하면서 하나님의 성품을 배웠다고 고백했다. 잘 지내던 아이들이 어느 날 시기하고 질투하며 싸우는 모습 속에서 자기를 발견하게 된다. 때로는 봉사하러 가기 싫은 날이 있는데 그런 날엔 더 하나님이 위로하시고 함께 하신다는 걸 느낀다.

“어릴 때부터 늘 입양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총각은 입양을 할 수 없다네요(웃음). 그것 때문에라도 결혼을 해야겠어요. 짧은 인생을 사는 동안 보육원 아이들 등 누군가의 다리 역할을 하며 살고 싶습니다.”

김아영 기자